[2009 신춘문예]젊은 그들, 문학의 門열다

  • 입력 2009년 1월 1일 00시 11분


《“작가님들, 그렇게 굳어 있으면 사진에 화난 것처럼 나와요.”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포토스튜디오. 당선 확정 뒤 한자리에 모인 2009년 신춘문예 당선자들. 나이 성별 천차만별인 9명은 표정도 몸짓도 ‘한결같이’ 어색했다. 작가란 호칭에도 멈칫하거나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달랐다. 오래도록 내면이란 가마솥에서 끓이고 우려냈을 작가의 열정 때문이다. 이제 갓 떠올린 첫 그릇의 작품을 내놓은 떨림과 기대가 쫀득하다. 그 순수한 마음, 영원히 잊지 말길. 사골국물처럼, 첫 맛을 지키며 두고두고 깊어지길.

정리=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당선자들의 작품밖 이야기들

간절히 원하면 온 세계가 열망 도와줘

“딸 성탄절 선물 산다고 마트에 갔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다. 소설가 김연수 씨의 ‘밤은 노래한다’ 후기에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준다’는 대목이 있다. 내게도 그런, 세상의 도움이 찾아와줬다. 이런 기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글 쓰겠다. 한참, 이젠 글과는 인연이 없나보다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남편도 당선되니까 더 공부하라고 부추기더라.”(문학평론 오연경 씨)

희곡? 소설?… 내 길은 ‘동화’에 있었네

“설거지를 하려다 (당선 전화에) 막 소리를 질렀다. 집에 있던 12세 남동생에게 말해줬더니 ‘뭐 그런 걸로’ 하며 방에 들어가 버리더라, 세상에. 먼 산을 바라보듯 막연했던 생각이 현실에서 벌어지니까 뭘 해야 될지 감이 안 잡힌다. 희곡도 써보고 소설도 써봤는데 ‘동화 같다’는 평이 많았다. 예전엔 악평이라 생각했는데 내 길이 따로 있었던 거구나 싶다. 이제 21세인데 작가는 무슨…. 최종 목적지인 ‘그림책’을 향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동화 조희애 씨)

글을 쓰는 건 다른 무언가를 버리는 것

“시큼하고 텁텁하다. 예상을 안해선지 의외로 담담하다. 일단 스스로에게 카잔차키스 전집을 사주겠다. 동생에게 용돈도 주고 싶고. 당분간 창작활동에 집중할 생활비가 마련된 게 기쁘고 고맙다. 글을 쓴다는 건 인생에서 그에 상응하는 중요한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다른 걸 버릴 수 있을 만큼 글은 내게 매력적이었다. 우직하게, 모두가 따뜻하게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을 써 나가겠다.”(중편소설 이정민 씨)

낡은 구두 버리고 새 신발을 신고 싶어

“신발을 사야겠다. 낡은 구두를 벗고 새 구두를 신고 싶다. 이사도 가고 싶다. 좁은 공간에 웅크리고 비틀린 내 책이 넓게 흩뜨려져 숨쉴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 글 앞에선 언제나 솔직해야 한다고 믿는다. 꾸미고 부풀리는 순간 글은 날 배신한다. 아직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시다 소설이다 경계를 두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형식보다는 거기에 담겨 있는 진실이 중요하다고 믿으니까.”(단편소설 이동욱 씨)

모두의 아픔 함께 울어주는 시인 될 것

“상금 받으면 자전거를 한 대 사야겠다. 무작정 자연 속으로 떠나야지. 시를 놓지 않고 살아온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다. 회사가 서울 광화문 근처에 있어 퇴근할 때마다 동아일보 사옥을 보며 난 여기 신춘문예로 등단하겠노라 다짐하곤 했다. 자기암시 비슷한 거였는데 덜컥 되고 나니 아찔하고 쑥스럽다. 힘든 시절의 어려움을 토로한 응모작이 많았단 예심 기사를 읽었다. 그런 모두의 아픔을 함께 울어주는 시인이 되고 싶다.”(시 김은주 씨)

시조는 재미없다는 평가 넘어서겠다

“난 (당선 전화를) 광고로 듣고 끊으려 했었는데…, 큰일 날 뻔했다. 시조 쓴다고 어질러놓는 걸 남편이 내켜하질 않았는데, 내색은 안 해도 기쁜 모양이더라. 21세 아들이 항상 글 쓰는 엄마가 존경스럽다고 말해줘 힘이 됐다. ‘이젠 당당히 우리 엄마 시인이라 말하고 다닐 것’이라며 기뻐하더라. 시조는 재미없다, 고리타분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안다. 언젠가 시조도 참 마음에 와 닿는단 평가를 받는 시조집을 꼭 내고 싶다.”(시조 김영희 씨)

세상과의 끈 놓지않고 끝까지 소통

“도서관에서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을 읽다 당선 전화를 받았다. 주위가 조용해서였는지 될 거란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 내가 봐도 너무 덤덤했다. 그런데 찬찬히 감흥이 왔다.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다, 글을 만나서 기쁘다, 여러 번 속으로 되뇌었다. (등단했으니) 이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글을 쓰면 안 되리라 다짐도 해본다.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소통하려 애쓰고, 치열하게 타인을 읽으려 공부하겠다.”(시나리오 박선영 씨)

희곡과 사랑에 빠졌던 나날들 행복

“올해 휴학을 했다. 용돈벌이로 교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상금 덕분에 당분간 쉬어도 될 것 같다, 호호. 무작정 희곡과 사랑에 빠졌던 나날을 돌아봤다. 어떤 명성이나 대가를 바란 적 없던 마음. 지금도 진행 중인 이 사랑에 감사한다. 이번 당선으로 내 글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 하지만 많은 희곡작가들이 공연 기회를 잡지 못하고 절망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모두, 지치지 말고 꾸준히 이 사랑을 지켜나가자.”(희곡 최문애 씨)

영화적 시각으로 글쓰기 매진할래요

“지금도 정신이 멍하다. 주위에 당선 소식을 알렸더니 첫 질문이 ‘상금 어디에 쓸 거냐’고 묻더라. 한 턱 내기도 해야겠지만, 올해 대학원 논문 학기에 들어가는데 등록금에도 보태고 싶다. 기쁘지만 두려움도 크다. 글쓰기는 알면 알수록 어렵다. 연습하고 공부할 게 너무 많다. 다만 언제나 영상 매체적인 관점, 영화적 시각을 항상 견지하며 글을 쓰겠다. 이번 경험은 인생 전체를 통틀어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영화평론 안지영 씨)


▲동아닷컴 백완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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