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로맨틱 가이 가수 알렉스

  • 입력 2008년 11월 28일 02시 59분


“바이크 타고 한강으로…

카메라에 푹 빠져 살아요”

알렉스를 만난 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1월 셋째 주의 토요일 오후였다.

인터뷰 장소인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로비로 내려가자 건물 밖 빌딩 외벽에 기대 담배를 물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장풍의 검정 재킷에 흰 티셔츠를 받쳐 입은 그는 TV 속 ‘알서방’보다 약간은 쓸쓸하고 조금 더 차분한 매력을 풍겼다.

알렉스. 그는 2008년을 대표하는 로맨틱 가이다.

MBC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최근까지 탤런트 신애와 가상 부부생활을 한 그는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각종 이벤트를 선사하다 못해 심지어 발까지 씻어주는(!) 모습을 연출해 단숨에 여성들의 ‘로망’이자 남성들의 ‘적(敵)’으로 떠올랐다.

‘달콤한 여가’의 상징과도 같은 알렉스의 진짜 여가는 어떤 모습일까. 동아일보 위크엔드 ‘내 삶의 여백’ 코너에 그를 초대했다.

○ 일상의 오아시스, 금호동 뒷동산

사실 이날 인터뷰는 좀 아이러니했다. 데이트를 하거나 집에서 뒹굴어도 부족할 토요일 오후에 ‘여가’를 주제로 한 인터뷰를, 그것도 주말 인파를 피해 신문사 회의실에서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그에게도 여가란 게 있긴 있을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해요. 어쩌다 아무 스케줄이 없는 날이 생기면 ‘뭘 할까’가 아니라 ‘뭘 안했나’를 생각하죠. 은행 가기, 주민센터 가기, 빨래하기, 이런 거요(웃음). 근데 전 이런 생활이 좋아요. 뭔가를 계속하지 않으면 완전히 뻗어버리는 스타일이라.”

스스로를 ‘당근보다는 채찍이 필요한 타입’이라고 설명할 만큼 ‘일적인 삶’을 추구하는 그의 여가는 일과 일 사이 일상에 소박하게 녹아 있다.

“성훈이 형(알렉스가 속한 그룹 ‘클래지콰이’의 DJ) 부부랑 같은 아파트 같은 동(棟)에 층만 다르게 살아요. 집이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있는데, 제 누나랑 친한 동생까지 다섯이서 일명 ‘금호동 뒷동산’이란 시트콤을 찍고 놀아요. 각자 역할도 있어요. 무능력한 아버지, 엄마, 이모, 노는 큰아들 같은…(웃음). 이 다섯 명이 모여 밤새 수다를 떨면 ‘고구마 파이’로 시작한 대화가 ‘하이브리드 카’로 끝날 만큼 정신없이 재밌죠.”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새벽, 그는 종종 홀로 아파트 근처 재래시장에서 김치보쌈에 소주 한두 병을 걸치기도 한다고 했다.

○ 요리는 싫어, 제일 재밌는 건 ‘사람 구경’

여기서 잠깐. 실제의 알렉스도 ‘알서방’처럼 직접 멋진 요리를 해 먹을까.

“요리요? 그건 절대 저의 여가생활이 될 수 없어요(그의 표정은 꽤나 단호했다). 남한테 해주는 건 몰라도 혼자 만들어 혼자 먹는 밥은 너무 싫어요. 얼마 전 밥솥 CF를 찍기 전까진 집에 밥솥도 없어서 햇반만 사먹었다니까요. 아침은 동네 순댓국 집에서 해결하고요. 전 제가 만든 프랑스 요리보다 여자 친구가 끓여주는 라면이 더 맛있어요.”

여자 친구의 라면이 좋다는 알렉스지만 사실 그는 3년째 ‘솔로’다.

“데뷔 전 여자 친구가 있을 땐 평범한 여가를 같이 보냈어요. 명동같이 사람 많은 데서 손잡고 쇼핑도 하고,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것도 보고…. 혹시 가보셨어요? 되게 재밌는데. 왁자지껄한 동대문 포장마차에서 말아먹는 국수도 좋았죠.”

지금은 쉽게 할 수 없는 여가생활 중엔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사람 구경’도 있다.

“캐나다에 있을 때부터 사람 구경을 즐기게 됐어요. 당시 밴쿠버에서 제일 붐비는 롭슨 거리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문 닫을 시간쯤 커피 한 잔을 들고 거리에 앉아서(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보도블록에 걸터앉는 자세를 취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거예요. 그럼 홈리스(homeless·노숙자)들의 대화부터 별의별 거리 풍경이 다 들어와요. 저는 생각하죠. 저 사람의 머리는 원래 빨간색일까, 저기 저 남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명동에서도 많이 그러고 있었어요(웃음).”

○ 기회 되면 ‘코에서 땟국물 나도록’ 바이크 일주 하고싶어

요즘 알렉스는 명동 대신 새벽시간 집 근처의 동호대교로 향한다. 그가 즐겨 타는 자신의 커스텀 바이크에 카메라를 실은 채.

2005년부터 디지털렌즈교환식(DSLR) 카메라에 빠졌다는 그는 수준급 사진 실력을 갖고 있다. 내년 초쯤에는 그의 사진과 이야기, 요리 레시피 등이 담긴 책도 나올 예정이다.

캐논 마니아인 그가 사용하는 카메라 보디는 ‘5D’. 여기에 28∼70mm 렌즈 및 30.4mm 단렌즈, 광각, 망원렌즈 등을 붙여 쓴다.

“다리에 도착하면 삼각대를 세우고 벌브모드로 셔터를 연 카메라를 올려요. 야경이 찍히길 기다리는 동안 전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사람들을 관찰하죠. 저 아저씨는 왜 이 시간에 걸어서 다리를 건널까, 왜 취했을까, 집에 가면 누가 있을까….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져요.”

알렉스는 ‘이래서 바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웃었다. 생각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가만히 뒀다간 ‘돌처럼 굳어 먼지처럼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조용히 생각하는 게 좋아 차에서 음악도 틀지 않는다는 그는 잠시 가수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를 흥얼거린 뒤 말을 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바이크를 타고 ‘코에서 땟국물이 나오도록’ 달려보고 싶어요. 한두 달 국도를 따라 돌면서 멋진 사진도 찍고요.”

당장 다음 달부터 연이은 콘서트가 예정돼 있는 알렉스에게 ‘땟국물 질주’는 아직 요원한 꿈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괜찮아 보였다. 여가보다 더 큰 활력을 주는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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