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시간이 멈춘 古都… ‘부다페스트’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3시 08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로 가는 길은 멀다. 인천공항을 떠나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까지 약 14시간, 그곳에서 2, 3시간을 기다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을 날아가야 한다. 한국에서 오후 2시쯤 비행기를 탄다면 부다페스트 페리헤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은 같은 날 오후 11시쯤(한국과의 시차는 ―8시간)이 된다. 이때쯤이면 여행객들의 얼굴에서 이국에 대한 설렘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게슴츠레한 눈과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얼굴에서 긴 비행의 피로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공항에서 차를 타고 40분가량 달려보라. 눈앞에 서서히 들어오는 부다페스트 시내의 야경(夜景)에 당신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진다. 흑진주처럼 검게 빛나는 다뉴브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도심 곳곳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고풍스러운 다리와 동화 속 궁전 같은 옛 건물들…. 초고층 빌딩과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무장한 미국 뉴욕이나 일본 도쿄(東京)보다, 말끔히 단장된 서유럽의 그 어느 도시보다 동유럽의 이 고도(古都)는 아름다운 마력(魔力)을 내뿜는다.

▶이 기사에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은 동아일보 위크엔드팀 블로그(www.journalog.net/teamweekend)에서 볼 수 있습니다.》

● 동유럽의 진주, 부다페스트

지난달 말 찾은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운 유럽의 가을 정취를 한껏 내뿜고 있었다.

붉은 단풍이 없다는 헝가리의 가을 거리에는 다양한 톤의 노란 낙엽들이 흩날렸다. 이른 아침 청명한 가을 하늘에서는 오렌지 알갱이 같은 햇살이 쏟아졌다. 바람은 그렇게 차지 않았다. 최근 2∼3년간 부다페스트의 가을, 겨울은 점점 더 온화해지고 있다고 했다.

어둠이 물러간 부다페스트의 풍경을 확인하기 위해 과거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던 시내 중앙로를 달려 겔레르트 언덕으로 향했다. 해발 235m의 이 언덕에 오르면 부다페스트 도시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독일 남부에서 시작돼 9개 나라, 2850km를 달린다는 다뉴브 강은 부다페스트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른다. 이 강을 기준으로 왼쪽이 부다, 오른쪽이 페스트 지역이다. 예부터 얕은 구릉지형인 부다에는 왕족이나 귀족이, 지평선이 보일 만큼 광활한 평지인 페스트에는 서민들이 살았다.

두 도시가 ‘부다페스트’로 합쳐진 것은 100여 년 전. 그러나 아직도 헝가리의 옛 왕궁이 있는 ‘왕궁의 언덕’을 비롯해 부다페스트 최고의 부촌(富村)인 ‘로자돔(장미의 언덕)’ 등은 부다 지역에 있다.

페스트에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본떠 만들었다는 2.3km 길이의 대로(大路) ‘안드라시 거리’를 비롯해 지하철, 백화점, 중앙시장, 시민공원 등이 밀집해 있다. 서울보다 약간 작은 부다페스트에는 약 200만 명이 산다. 올망졸망한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하면 상당히 큰 편이다.

●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

부다페스트는 옛 유럽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도시다. ‘부다페스트’란 행정구역의 역사는 10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헝가리의 수도로 기능해 온 이 지역의 역사는 1200여 년에 이르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 곳곳에선 로만, 고딕, 네오 클래식, 네오 바로크, 네오 르네상스, 아르누보 등 다양한 양식의 시대별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다.

헝가리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이슈트반 왕을 기리는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비롯해 80m 높이의 아름다운 고딕 양식 탑을 자랑하는 마티아스 성당, 국회의사당, 헝가리 국립 오페라극장 등은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외관보다도 화려한 내부 장식으로 더 유명한 이들 건물은 반드시 직접 안으로 들어가 그 장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로마시대부터 ‘유럽의 온천’으로 불렸다는 이 지역에서는 중후한 중세풍 건물 안에서 즐기는 온천욕도 경험할 수 있다. 지금도 시내에만 100개가 넘는 온천이 있을 정도로 온천 명소인 부다페스트에는 웅장한 돔 천장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자랑하는 고품격 온천이 여럿이다.

다뉴브 강에 놓인 최초의 다리인 ‘세체니 다리’도 부다페스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 1849년 완공된 이 아름다운 다리는 매일 밤 5000여 개의 주먹만 한 전구들이 환하게 불을 밝혀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단연 돋보인다.

페스트 지역에서는 지하철도 꼭 타봐야 한다. 부다페스트의 주요 명소를 연결하는 지하철 ‘M1’은 1896년 개통된 유럽 대륙 최초의 지하철로, 장난감 열차처럼 귀여운 디자인과 샛노란 컬러가 매력적이다.

● 세월의 흔적이 묻은 골목길의 소박한 풍경

하지만 부다페스트의 진짜 매력은 이런 랜드마크들보다 평범한 골목골목에서 더욱 짙게 묻어난다.

4, 5층 높이가 보통인 부다페스트 도심 건물들은 부유한 서유럽 대도시의 잘 관리된 건물들과 달리 ‘현학적이지’ 않다. 검게 때가 탄 외벽, 깨어져 나간 벽돌…. 색을 새로 입힌 건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사면(四面) 중 큰길에서 보이는 앞면만 칠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다페스트의 전형적인 ‘ㅁ’자 구조 공동주택에는 ‘끼익-’ 소리가 요란한 목재, 철제 엘리베이터가 여전히 오르내린다. 이는 1989년까지 사회주의를 유지한 헝가리에 도심의 모든 건물을 유지 보수할 만큼의 재정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데, 역설적으로 세월의 흔적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이런 건물들 덕에 유럽의 옛 풍경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흔한 건물색은 노란색. 옅은 크림색부터 짙은 황색에 이르기까지 소박하고 포근한 색감이 오래된 도시의 가을과 잘 어우러진다.

또 부다페스트는 도시 전체가 ‘빈티지 카(car)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내 어디서나 1960∼1980년대 출시된 다양한 브랜드의 옛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열에 아홉은 경차, 혹은 소형 차다. 이들은 마치 유럽의 옛 애니메이션이나 빈티지 카 화보에서 톡 튀어나온 듯한 깜찍한 모양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반갑게 한다.

안드라시 거리를 따라 다뉴브 강 쪽으로 걷다 보면 어느덧 정면의 서쪽 하늘로 저물어가는 석양이 보인다.

도시는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거리에는 건물과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통기타를 든 악사들의 애잔한 집시 음악이 거리에 흐른다. 부다페스트의 가을은 그렇게 깊어간다.

부다페스트=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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