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소프라노 신영옥 씨

  • 입력 2008년 10월 31일 02시 57분


숨막히는 ‘무대 스트레스’ 요가로 훌~ 훌

《동아일보 위크엔드는 앞으로 유명 인사들의 여가와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는 ‘내 삶의 여백’을 싣는다. 이 코너를 통해 자신의 영역에서 늘 최선을 다하며 바쁘게 사는 이들이 주말 또는 여가에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소개해 유명 인사들의 잘 드러나지 않은 인간적 면모까지 엿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첫 회는 소프라노 신영옥 씨.》

이달 중순 소프라노 신영옥(47) 씨를 서울 광진구 광장동 W호텔에서 만났다.

나이키 운동화와 검은색 운동복 차림의 그는 생각보다 아담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곧추세운 자세가 너무나 꼿꼿해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사는 그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공연과 이달 초 선보인 자신의 음반 ‘시네마티크’ 홍보를 위해 귀국해 W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 올 때면 늘 이 호텔을 이용한다. 40대 중반의 막내딸을 아직도 ‘이쁜이’라고 부르는 아버지가 인근 워커힐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딸의 해외공연에 방해가 될까 봐 1993년 자신의 죽음도 알리지 못하게 당부하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는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였다. 신 씨는 서울에 있을 땐 아버지와 식사도 함께 하고, 팔짱을 끼고 아차산 산책도 한다.

그의 ‘삶의 여백’은 어떤 색깔일까.

○ 세계적 성악가의 검소한 일상

호텔 방 안에 들어서자 세계적인 성악가의 치열한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5개의 커다란 여행용 트렁크가 놓여 있는 방 안은 온갖 살림살이로 꽉 차 있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중 빨간색 트렁크 안에는 비타민과 고려홍삼 순액 등 각종 건강보조제가 들어 있었다. 신 씨는 1년 중 10개월을 해외에서 보내기 때문에 각별히 건강을 챙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방 안에 있는 15켤레의 신발은 ‘페라가모’ 하나를 제외하면 평범한 것들이었다. 프랑스 파리 몽테뉴 거리에서 10여 년 전 큰맘 먹고 샀다는 ‘발렌티노’ 재킷을 빼면 옷가지도 검소했다. 해외여행이 어렵던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30여 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 그 아니던가.

“시간이 나면 종종 뉴욕 메디슨 애비뉴에서 럭셔리 브랜드 상점에도 들러보고, 이스트 빌리지 지역에서 재미난 빈티지 물건들도 구경해요. 그런데 워낙 어려서부터 해외에 살다보니 비싼 물건엔 욕심이 안 생겨요. 명품이란 게 굳이 필요하지도 않고요. 신발은 20달러(약 2만8000원) 내에서 발이 편안한 걸 고르고, 한국에 오면 주로 이마트에서 옷과 모자 등을 쇼핑해요. 한국의 할인마트에는 싸면서도 질 좋은 물건이 많더라고요.”

그는 샤워할 때 쓰는 ‘이태리 타월’을 항상 갖고 다니는데, 오래 써 작아진 비누 조각들을 이 안에 넣어 쓴다. 호텔 거울을 휴지로 닦는 것도 아까워 빨아 쓸 수 있는 스펀지를 늘 휴대한다. W호텔의 아침식사 때 나오는 더덕구이도 “좀 더 잘게 자르면 손님들이 남기지 않을 것 같다”고 건의할 만큼 검소하다.

자외선 차단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그런지 그의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이날도 눈가에 하늘색 아이섀도만 살짝 발랐다. 평소 ‘자라’에서 비싸지 않은 옷들을 사고, 액세서리는 주렁주렁한 게 싫어 눈에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목걸이만 한다. 저녁 모임 때는 청바지에, 몸에 꼭 맞는 클래식한 재킷을 걸칠 때가 많다.

○ 심신의 여유,편안함 찾아준 요가

신 씨는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코코’라는 네 살배기 흰색 암컷(그는 결코 ‘암컷’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치와와 강아지와 함께 산다.

맑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우리 코코는요, 오늘 뭐했나요? 닭고기는 맛있게 먹었나요? 엄마(신 씨)를 많이 보고 싶었지요?”라고 말을 건네기 때문인지 코코는 유독 애교가 많다고 한다. 여성스럽고 사랑 넘치는 ‘엄마’를 닮아 누구에게나 뽀뽀를 잘하는 코코를 보면 은근히 속상하다는 게 신 씨의 ‘고백’이다.

“해외 공연을 다닐 땐 코코를 뉴욕의 동물호텔에 보내요. 호텔비가 엄청 비싸서 코코가 나보다 돈을 더 많이 쓴다니까요(웃음).”

그는 예전에는 가끔 연애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오래 가진 않았다고 했다. 여럿이 어울릴 때 호감을 보이다가도 정작 단둘이 만나 식사라도 하자고 먼저 제안하면 남자들이 부담을 갖더라는 것이다. 잦은 해외 공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게 집안 인테리어다. 1990년대 중반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정 시대의 사람이 돼보고 싶어’ 샹들리에와 금색 프레임의 거울 등으로 집 안을 꾸몄다가 2년 전에는 아이보리색 위주의 모던한 인테리어로 바꿨다.

맨해튼에 머물 때면 늘 운동화를 신고 센트럴파크를 달린다. 피트니스센터에서 개인교습을 받을 때도 있지만 조깅을 하면서 땀을 흘릴 때 가장 개운함을 느낀단다.

몸이 피로하다는 신호를 보낼 때면 요가도 한다. 선화예술학교 후배인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 뉴욕에 왔을 때 따라간 요가센터에서 처음 하게 됐는데, 호흡을 깊게 하면서 몸을 늘이는 동작이 심신의 편안함을 줬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캐모마일 차도 즐겨 마신다.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1990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인터내셔널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비교적 뒤늦게 세계무대에 데뷔한 그는 예전에는 ‘완벽주의’로 똘똘 뭉쳐 있었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해 숨이 막히기 일쑤였다.

“요가를 하면서 삶의 여백을 찾은 것 같아요. 늘 무대 위에서 긴장하면서 남들이 어떻게 나를 평가할까 신경을 곤두세웠으니까요. 이젠 실수도 귀엽고 너그럽게 넘길 수 있게 됐어요. 삶의 긴장을 늦추는 시간이 바로 제 삶의 여백 같아요.”

그는 지금까지 12개의 음반을 냈다. 이 중 동아일보 독자들을 위해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앨범 3개를 꼽아 달라고 하자 ‘아베마리아(1996)’, ‘크리스마스 캐럴(2001)’, ‘시네마티크(2008)’를 들었다. 우아하면서도 인간적인 그의 음악을 만나보시길 권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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