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인생엔 늘 예외가 있지 내가 고아가 된 것처럼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사이더 하우스/존 어빙 지음·민승남 옮김/484, 552쪽·각권 1만2500원·문학동네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과 하츠 헤이븐의 사과농장은 표면적으로는 사뭇 달라 보인다. 원치 않은 아이를 갖게 된 여자들은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으로 온다. 그곳에서 그들의 선택은 ‘낙태 혹은 아이를 낳은 뒤 고아원에 맡기는 것’으로 나뉜다. 그렇게 태어난 고아들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은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길이다.

오션 뷰 사과농장은 다르다. 원치 않는 존재라는 게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죽이거나 버리는 일 대신 키우고 기르는 일을 한다. 사랑과 생명력이 넘치는 이곳은 외부 세계와 차단된 답답한 고아원과는 달랐다. 호머 웰즈는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다고 믿었고 그래서 고아원을 떠나 하츠 헤이븐이란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영화 ‘사이더 하우스’(1999년)의 원작인 존 어빙의 소설은 이 두 공간을 배경으로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 소년 호머 웰즈의 성장기를 그려냈다.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 원장이자 산부인과 의사이기도 한 윌버 리치는 고아를 돌보는 것뿐 아니라 낙태금지법에 맞서 임신한 여인이 낙태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는 것도 ‘주님의 일’이란 신념을 가지고 있다. 헌신적으로 고아원을 운영하는 그는 아들처럼 아끼는 호머가 자기 일을 계승하기 바라며 의술을 가르친다. 그러나 호머는 아이를 낙태시키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하츠 헤이븐 사과농장의 윌리와 캔디 커플을 따라 고아원을 떠나 버린다.

호머는 윌리의 사과농장에서 노동자로 새로운 삶을 찾는데 여기서 이제껏 몰랐던 많은 규칙을 만나게 된다. 농장 일꾼이 지켜야 할 규칙,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비롯해 윌리의 애인인 캔디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까지….

호머는 사과농장에서 15년여를 보내며 인간의 삶은 규칙을 깨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과농장의 흑인 인부들은 명문화된 농장 규칙을 지키지 않는데, 실제 삶에 적용되는 자신들만의 규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호머도 캔디와의 불륜으로 아이를 낳음으로써 규칙을 깼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규칙이 존재하지만 과연 어떤 규칙이 유효한 것이며 어떤 규칙이 허례에 불과한 것일까. 그간의 체험을 통해 뒤늦게 자기 삶을 뒤돌아본 뒤 호머는 원장이 기다리고 있는 고아원으로 귀환한다.

그는 고아원에서 원장처럼 찾아오는 여성에게 낙태에 대한 선택권을 주며 살기로 결심한다. 낙태금지법처럼 현실을 불행하게 하는 규칙에 순응하는 대신 그에 맞서는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1000쪽에 이르는 이 소설은 영화에서 모두 담아내지 못한 ‘삶과 규칙’에 관한 작가의 주제 의식을 탄탄한 서사와 생동하는 캐릭터 속에 살려냈다. 작가의 신랄한 유머도 시선을 잡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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