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새책]여성 그리고 사랑 이야기

  • 입력 2008년 8월 26일 18시 12분


◇작은 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마르셀라 세라노 지음·권미선 옮김/376쪽·11000원·문학동네

루이자 메이 올컷의 고전 명작 ‘작은 아씨들’을 20세기 칠레를 배경으로 리메이크 한 작품. 작은 아씨들을 꼭 닮은 니에베스, 아다, 루스, 롤라 네 사촌 자매들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칠레 남부의 푸에블로에서 웃고 울고 싸우며 화해하는 이야기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푸에블로에서 마지막 여름에 일어난 아다의 강간 사건, 그 후 가문에서 운영하는 제재소의 부도,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는 그들의 운명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고 네 사촌 자매는 뿔뿔히 흩어져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 네 사촌자매들이 각각 화자가 되어 1970년대부터 2002년까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어쩌면 후르츠 캔디/이근미 지음/296쪽·9500원·달

누구나 동경하는 멋진 광고계 속으로 들어간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다. 일과 사랑, 세련된 취향 등 한국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고 할 만 하다. 평범한 외모, 평범한 집안의 스물네 살 조안나는 운 좋게도 메이저 광고대행사에 입사한다. 그룹 회장 아들인 기획 전무가 면접에서 보여준 그녀의 발랄함을 높이 사 발탁한 것이다. 높은 학벌과 집안을 따지기로 악명 높은 곳에서 조안나의 입사는 워낙 파격적인 것. 이 때문에 안나는 회장님의 조카라는 오해를 사게 된다. 여주인공의 신분 상승이라는 칙릿 소설의 법칙을 따르지만 정감 있고 씩씩한 주인공의 모습은 사랑스럽다.

◇이지연과 이지연/안은영 지음/304쪽·10000원·P堂

‘여자 생활 백서’의 저자 안은영이 쓴 ‘칙릿’. 이 책에는 스물일곱과 서른네 살의 두 명의 이지연, 나이 탓인지 한 명은 사랑 밖에 난 몰라인 애정지상주의자, 다른 한명은 사랑보다 일이 더 좋아진 사랑기피자다. 두 사람은 요가 스튜디오에서 강사와 회원으로 처음 만난다.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던 두 사람은 사건 사고들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진다. 저자는 같은 이름에 다른 나이 대를 살아가는 두 주인공의 삶의 모습을 솔직한 입담으로 펼쳐보인다.

◇잠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모리미 토미히코 지음·서혜영 옮김/400쪽·12000원·작가정신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판타지 연애소설이다. 천진난만하다 못해 이 세상 사람이기 보다는 저 멀리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속에 살 법한 여대생과 그런 그녀를 짝사랑하는 어수룩한 남학생의 고군분투 극이다. 만화 ‘도라에몽’에 나올 법한 3층 전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본 듯한 기인들이 등장하는 등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됐다. 참으로 지치지도 않고 활보하는 여학생을 뒤쫓으려다 길가에서 팬티와 바지가 벗겨지는 봉변을 당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단 잉어를 맞고 기절하지만 주인공은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여담이지만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수상한 저자가 ‘교토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써보자고 마음먹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여자는 두 번 떠난다/요시다 슈이치 지음·민경욱 옮김/203쪽·9800원·media2.0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 여성들을 기만하고 배신하고 협박하고 상처 줬던 ‘못된’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서툴고 답답했던 젊은 날의 사랑 이야기가 11편 펼쳐진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자기를 기다려 주는 여자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며칠 씩 안 돌아오는 남자(장대비 속의 여자), 우연히 공중전화 앞에서 듣게 된 여자의 약점을 이용해 그녀의 몸을 탐한 한 남자가 자신은 뭔가 다르다고 착각했다가 결국 똑같은 사람임을 깨닫는(공중 전화의 여자) 등 작품 속 남자들은 찌질하고 서툴다. 여자는 알 수 없고 제 마음 조차 알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 작가는 연민을 보낸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의 연애 소설.

◇그린 핑거/김윤영 지음/272쪽·9800원·창비

9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김윤영의 세 번째 소설집. 표제작 ‘그린 핑거’를 비롯해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린 핑거’에서는 언청이 였으나 여러 차례 수술 끝에 정상적인 외모를 갖게 된 여성이 옛 모습을 숨긴 채 교포인 남편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산다. 평화롭던 그녀의 일상은 한국에서 희주 모녀가 다녀간 뒤로 깨지고 만다. 그녀는 남편이 희주 엄마를 그리워 하고 자신의 선천성 장애 때문에 아이를 갖기 않으려 한다고 믿어 버린다. 써니의 집착이 계속되자 결국 남편은 집을 나가고 홀로 남은 써니는 정원을 가꾸며 남편을 기다린다.

◇오늘의 레시피/다이라 아스코 지음·박미옥 옮김/쪽·9800원·문학동네

‘파트 타임 파트너’, ‘멋진 하루’의 작가 다이라 아스코의 소설. 인간의 욕망 중 가장 절실하고 원초적인 성욕과 식욕을 한데 엮어 재기 넘치는 문장에 녹여 냈다. 사실 두 욕망은 별개가 아니다. 서먹 서먹한 남녀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가까워지고 사랑한 후에는 허기가 찾아 오기 때문. 책 속에선 조개구이, 감자 샐러드, 카레 우동, 버터밥 등 다양한 요리를 연애에 빗대 표현했다. 일상적인 연애를 기본 요리로 약간은 불온한 사랑을 별미로 준비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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