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하 교수 “정권 초기마다 일본 측에 당하고 있다”

  • 입력 2008년 7월 16일 15시 56분


"정권 초기마다 순진하게 대응하다가 일본 측에 당하고 있다. 이념성향은 다르지만 순진한 외교를 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를 강행한 것에 대해 신용하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는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독도전문가이자 독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신 교수를 1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사무실에서 만나 사건의 배경과 바람직한 대응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번 사건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하나.

"일본은 1999년 제2차 한일어업협정 때 한국이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기점을 울릉도로 설정해 독도를 중간수역에 두자 그때부터 독도를 뺏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것 같다. 그전까지는 한국을 압박하는 외교수단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로 사용했는데 그 때 이후부터는 독도를 침탈할 장기정책을 입안해 집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중고교 의무교육 과정에 그런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중고생 세대들이 성인이 됐을 때 침탈을 완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장기포석이다. 이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는 그런 장기정책의 일부다."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명기한 기존의 일본 교과서들과 이번 해설서는 어떤 차이가 있나.

"독도 문제를 다룬 현 일본 교과서들 사이에서도 강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후소샤(扶桑社)의 극우파 교과서는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영유권 논쟁이 있다고 다루는 교과서들도 있다. 이번 해설서는 일선 교사들에게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가르치라는 통일된 지침의 의미다. 교사가 지침을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다음번에 새 교과서를 만들 때 해설서 내용을 따르지 않을 경우 검정에서 통과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은 독도 문제에 있어 한국 정부의 대응에 따라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며 목표를 향해 전진해왔다. 강경 대응하면 멈추고 침묵하거나 1보 후퇴한다. 그랬다가 공세가 약해지면 기회를 포착해서 한꺼번에 2보 전진한다. 우리는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곧바로 강력한 독도수호 대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한다. 대책 없이 말로만 반발하면 시간 지나면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한일간 우호를 위해 독도 문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자, 그대로 놔두자'고 나설 것이다."

-정부의 대일 외교는 적절했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 후 미국, 일본과의 친선을 강화하려했다. 순진하게도 '우리가 일본에 대해 부드럽게 나가면 그쪽도 부드럽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권철현 주일대사는 4월 부임하자마자 "낡은 과제이면서도 현안인 독도와 교과서(역사왜곡) 문제는 다소 일본 쪽에서 도발하는 경우가 있어도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드러내지 말자"고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주일대사 소환은 적절했나.

"이런 상황에서 대사를 소환하고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 언론의 보도처럼 이 대통령이 일본 측에 독도 문제를 양보하려했던 것 같지는 않다. 순진하게 친선 표시를 하려다가 이렇게 됐다. 항상 주의해야할 것은 독도는 영토, 영토는 주권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이것은 다루지 않겠다'거나 '호주머니에 넣어두겠다'거나 하는 식으로 쓸데없는 의사를 표시해 외교적인 협상이나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주권과 영토는 처음부터 확고히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전달한 뒤 그 밖의 부분에서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 정상적인 외교, 강대국의 외교이다. 일본의 집권자들은 영유권이 0%인 독도를 어업협정이라는 외양을 한 EEZ협정까지 맺는 노회한 책략가들이다. 한국은 정권 초기마다 집권자들이 일본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신호였나.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 초기(2004년 1월 14일 연두기자회견)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내 아내를 자꾸 내 아내라고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는가. 내 아내는 그냥 말 안 해도 내 아내다'라고 부드럽게 했다. 1년 뒤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등 역사를 왜곡한 후소샤 교과서가 등장했다. 결국 일본과의 대립상태에서 정권이 끝났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해소한답시고 독도와 교과서 문제를 다루지 않겠다고 했다. 성향은 달라도 순진하고 어린애 같은 외교를 하는 것은 두 정부가 똑같다."

-우리 정부가 맞대응할수록 논란만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이웃 청년이 내 아내가 마음에 든다며 동네방네 자기 아내라고 떠들고 돌아다니면 그 때마다 야단을 치거나 부인해야한다. 침묵만 지키고 있으면 나중에 정작 남편은 못난 남편이 되고 아내는 이상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주권이나 영토, 국민과 같이 국가의 존립근거가 되는 귀중한 것은 남이 부당하게 훼손하지 않도록 즉각 대응하면서 반격하고 지킬 줄 알아야한다. 이웃과 친선과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도 그런 전제가 충족된 뒤에 가능한 것이다. 아내 뺏기면서 친선해봐야 친선이 아니다."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하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점유를 강화해야한다. 현재 부부 한 쌍이 살고 있는데 독도에 가서 살고 싶어 하는 울릉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국제사회는 경찰과 군대가 지킨다고 실효적 점유로 보지 않는다. 민간인이 생활권을 이루며 평화적 지속적 점유를 해야 한다. 경찰이나 군대는 이들을 지킬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5가구 정도만 살아도 완벽한 실효적 점유가 될 것으로 본다. 또 독도에 당장 내일이라도 정부의 관리사무소를 두고 상주 공무원을 파견해야 한다."

-그 외 대책이 있다면.

"정부가 진정 용기가 있다면 한일어업협정 종료를 통보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방법이 있다. 어업협정이 독도를 중간수역에 두면서 논쟁거리를 만들었다. 협정에 따르면 협정 당사자 일방이 협정 종료를 (서면)통보하면 기존 협정은 6개월 뒤 폐기된다. 즉 6개월 이내에 협정을 다시 체결하지 않으면 중간수역 개념이 사라지고 그때부터 영해에 따라 배타적 어업을 하면 된다. 독도는 한국 수역에 있는 울릉도의 부속도서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영유권이 그대로 인정된다. 한국 정부는 독도가 국제법과 역사, 지리적으로 100% 고유영토라는 것을 또 한번 자각하고 일본의 침략외교, 제국주의 공격 외교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황장석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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