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발견]미끄러질듯 매끈한 의자 유머 담긴 조형미

  • 입력 2008년 6월 27일 03시 12분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록히드 라운지 의자’는 마치 물개 모습을 형상화한 듯 형태가 독특하다. 미국 록히드사 비행기를 모티브로 실제 제작에 쓰이는 알루미늄 판재 접합 방법을 활용해 의자로 만든 것이다.

얼핏 보면 전통적 라운지 의자인 것 같지만 실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다. 매끄러운 표면과 둥글둥글한 모양으로 앉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딱딱하고 차가운 알루미늄 소재로 기능적으로는 전혀 라운지 의자 답지 못하고 안락함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의자를 기반으로 호주의 무명 예술가 뉴슨은 세계적 디자이너로 발돋움하게 됐다. 왜 이런 디자인이 매력적일까?

이 의자에는 편안하게 앉는 기능보다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 위에 올라타는 상상을 충족해 준다는 판타지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나는 뭔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고 그것에 기술을 접목하기를 원한다.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개선하는 것을 즐기지만 디자인이 종교처럼 그렇게 심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인은 재미난 장난이나 농담과 같고 그 안에 유머가 있어야 한다.”

그는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나 보석디자인과 조각을 전공했다. 1986년 ‘록히드 라운지 의자’를 전시하던 중 한 일본 사업가의 눈에 띄어 도쿄에서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 뒤 그는 가구 가전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어린아이의 상상력과 장난기가 넘치는 즐거운 몽상가이다. 그가 즐겨 디자인하는 오브제들은 1950년대의 미국적 디자인과 2000년대의 기술 및 미래적 상상력을 결합한 ‘레트로-퓨처리즘’으로 표현된다. 뉴슨은 우수한 장인이며 완벽함을 주장하는 엄청난 고집쟁이다. 디자인의 모든 디테일을 자신이 결정하기를 원한다. 그의 작품은 재미와 유머를 담은 즐거운 조형들이지만 디테일에 대한 그의 집착 덕분에 아름다움으로 완성된다.

디자인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놀라움과 이를 발견하는 재미다. 일상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은 역설적이고 모순적이기에 보는 순간 우리를 혼돈스럽게 만들지만 곧이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며 즐거운 환상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런 디자인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가끔씩 볼 때 더욱 즐겁다. 매일 사용하는 도구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삶에 자극을 주는 비타민 같은 것이다.

디자인의 역할이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것만은 아니다. 삶에 재미와 환상을 주고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요즘 우리에겐 디자인 자체의 순수하고 재미난 동기를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박영춘 삼성디자인학교(SADI) 제품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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