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로하는 ‘퓨전 소리 축제’…위희경

  • 입력 2008년 6월 10일 08시 23분


국악인 위희경(35)의 ‘소리인연30-축제’는 단순한 공연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삶의 포트폴리오’와 같은 자리였다. 국악입문 30주년을 기념해 연 이번 연주회는 지난해 겨울 국립국악원에서 가진 두 번째 독주회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지만, 그 의미와 무게감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펼쳐진 위희경의 ‘삶풀이’ 공연에 관객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공연장 밖은 찬비와 함께 촛불시위대와 전경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위희경의 음악은 마치 ‘안정제’같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야금의 청음(淸音)은 듣는 이의 날카로워진 신경을 보듬었고, 아쟁의 흐느낌은 까칠한 감성을 부드럽게 닦았다. 오고무는 김규형의 모듬북과 함께 심장을 들뛰게 만들었으며, 창과 발라드, 심지어 소울을 넘나든 위희경의 노래는 잿빛으로 가라앉은 영혼을 다스렸다.

위희경의 ‘축제’는 축제를 넘어 치유와 재활, 그리고 위로의 장이었다.

‘가야금 병창-조자룡 활 쏘는 대목’,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오고무’로 구성된 1부가 위희경이 익혀 온 국악의 장이었다면, 2부는 국악을 베이스로 다채로운 장르의 시럽을 쉐이커에 넣고 흔들어 낸 한 잔의 칵테일 같은 마당이었다.

연주에 비중을 두었던 1부와 달리 2부에서 위희경은 민요(판소리), 댄스(하루), 팝(엄마의 변명) 등을 부르며 연주인의 틀을 벗어나 ‘국악의 디바’로서의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

2부 후반부에서 마이크를 내려놓고 다시 한 번 가야금을 쥔 위희경은 재즈 트럼페터 이주한이 이끄는 퀸텟과 일렉트로니카 리듬 위에 한국적 멜로디를 토핑으로 얹은 ‘모던 춘향(권오경 작곡)’을 들려주었다. 이 곡에서 위희경이 보여준 기타와의 막판 ‘배틀’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윈터플레이의 기교파 기타리스트 최우준의 현란한 핑거링에 위희경은 우리 악기 가야금의 ‘힘’을 극도로 끌어내 쌍벽을 이뤘다. 위희경은 줄이 끊어질 정도의 강력한 파워를 보여줬다.

게스트들의 협연도 최고였다. 위희경의 춤 스승이기도 한 서울시립무용단 임이조 단장은 ‘상사몽’과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에서 특유의 그윽하면서도 우아한 춤을 보여주었고, ‘북의 명장’ 김규형은 모듬북을 통해 원초적인 타악의 야성을 여과 없이 터뜨렸다. 실내악단 아리의 반주 역시 정감이 넘쳤다.

공연의 엔딩은 뉴에이지풍의 아리랑 ‘뷰티풀 디어(Beautiful Dear)’였다.

위희경의 아쟁과 이주한의 트럼펫, 재즈 퀸텟과 김규형의 리듬파트가 어우러지면서 장대하고 광활한 아리랑의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날 공연은 동반 없이 혼자 참석했다. 관객들이 빠져나가는 사이 자리에 남아 공연의 남은 뒷맛까지 즐겼다. 그래서 아쉬웠다. 세상에는 혼자 보아 즐거운 공연은 많아도, 혼자여서 아쉬운 공연이란 그리 많은 것이 아니기에.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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