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국인이 피아노를 사?” 파리지앵 마음을 열다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사드 카하트 지음·정영목 옮김/352쪽·1만3000원·뿌리와이파리

그냥 파리가 아니라 ‘파리의 좌안’에 있는 ‘피아노 공방’이라…. 묘한 느낌을 주는 제목이다.

파리의 좌안(Rive Gauche·리브 고슈)은 센 강의 남쪽을 가리킨다. 소르본대가 있고, 사르트르와 헤밍웨이가 글을 쓰던 카페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파리 좌안’이라고 하면 왠지 예술적이거나 지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그곳에 있는 피아노 공방이라고 하니 조금은 더 특별해 보인다. 저자 역시 그런 효과를 노리고 ‘파리 좌안’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파리 좌안에 있는 한 피아노 공방을 둘러싼 이야기다. 피아노 이야기이며 동시에 피아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다.

어렸을 때 프랑스에 살았던 미국인 저자는 다시 시작한 파리 생활에서 동네의 피아노 공방을 우연히 발견한다. ‘데포르주 피아노’라는 이 가게는 피아노를 고치고, 고친 피아노를 팔기도 하는 가게다.

중고 피아노를 사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힌 저자는 몇 달간 공방을 들락날락한 끝에 맘에 드는 피아노를 사게 된다. 책의 초반은 그 몇 달간에 대한 이야기고, 뒷부분은 피아노를 구입한 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저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폭을 넓히면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저자는 피아노를 매개로 파리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책을 읽다 보면 외지인을 배척하다가도 어떤 계기로 친해지는 순간, 오랜 친구처럼 살갑게 대하는 파리 사람들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저자가 처음 피아노를 사러 갔을 때 공방의 주인은 수십 대의 중고 피아노를 갖고 있으면서도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피아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저자는 갖은 노력 끝에 피아노를 한 대 구입했고, 그 뒤로는 공방에서 열리는 ‘금요 와인 파티’에 참석할 정도로 지역민들과 가까워졌다.

막 구운 빵의 향기를 풍기는 동네 빵 가게, 여름이면 야외 탁자를 가득 늘어놓는 가로수길 모퉁이의 카페…. 책의 곳곳에 녹아 있는 파리의 일상 풍경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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