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800㎡ 나의 뒤뜰 ‘경이의 왕국’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사진 제공 지호
사진 제공 지호
◇풀 위의 생명들/한나 홈스 지음·안소연 옮김/372쪽·1만7000원·지호

뻔뻔이(Cheeky)는 얼룩다람쥐다. 만져도 아무 느낌이 없을 정도의 보드라운 털을 가졌다. 늦봄, 추위가 채 가시기 전 어느 날 저자는 부엌에서 뻔뻔이와 처음 마주쳤다. 해바라기씨를 매개로 한 둘의 우정이 시작된다.

뻔뻔이는 처음에는 부엌 바닥에 놓아둔 씨를 채갈 때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녀석이 무릎 위로, 손으로 올라오더니 어깨를 타고 넘는다. 저자의 호의적인 태도에 뻔뻔이의 행동은 갈수록 대담해진다. 부엌에 씨가 없으면 거실 소파로 와서 씨를 달라고 보챈다. 스웨터 주머니 안에 씨가 있으면 몸을 비틀며 들어가려고까지 한다.

저자는 책의 첫 장에 ‘뻔뻔이를 추억하며(In Memory of Cheeky)’라고 썼다. 책의 끝장에 이르기까지 뻔뻔이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한다. 그만큼 저자가 느낀 뻔뻔이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뻔뻔이를 만난 것이 저자에게 큰 행운이라면 그 행운은 자연을 사랑한 저자에게 자연이 준 선물이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사 간 저자는 한동안 자연을 잊고 살았다. 암소의 젖을 짜고, 울새와 갈매기를 애완용으로 키우던 일은 먼 옛날의 기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잡지를 읽다가 우연히 퀴즈 하나를 보게 된다.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텃새 다섯 종류와 철새 다섯 종류의 이름을 써보시오.”

함께 살고 있는 동식물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집 주변을 둘러보자고 결심했다. 미국 메인 주 사우스포틀랜드에 있는 저자의 집 뒤뜰에는 잔디밭이 있고 향기 나는 덤불, 떡갈나무 한 그루, 소나무 두 그루, 산벚나무 한 그루, 옻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테라스에 누워, 의자에 앉아, 잔디에 엎드려 풀 한 포기, 곤충 하나를 일일이 살피는 탐험이 시작됐다. 그렇게 1년 동안 관찰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과학과 자연에 대한 책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답게 저자의 관찰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꼼꼼하다. 더욱 큰 미덕은 그렇게 꼼꼼히 관찰한 것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글 솜씨다. 글을 읽다 보면 한 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듯 생생한 장면이 떠오른다.

저자의 눈에 가장 먼저 포착된 생물은 까마귀였다. 얼마나 자세히 관찰했던지 4마리의 울음소리를 각각 분별해 냈을 정도다. ‘보초 까마귀’가 어린 학생들을 보고는 울지 않지만 어른들이 지나갈 때는 경계하는 울음소리를 낼 정도로 지적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박새는 바람둥이다. 수컷 박새는 다른 수컷이 둥지를 비운 사이 그 수컷의 둥지로 몰래 들어가 암컷과 관계를 맺는다. 저자가 이름조차 몰랐던 스윈손지빠귀, 휘파람새, 흰관참새, 캐롤라이나굴뚝새, 고양이새도 뒤뜰에 살고 있었다.

뒤뜰의 생물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시종일관 따스하고 사랑이 가득하다. 무당벌레를 대하면서 “녀석은 강아지처럼 애교가 있다”고 말한다. 부엌문을 열어 둬서 뻔뻔이와 뒤영벌, 도롱이벌레가 부엌에 들어오도록 한다. 오죽하면 “이들이 내 가족이고, 내가 이들 가족의 일부”라고까지 할까.

단순한 관찰기라면 자칫 주변 잡기를 서술한 에세이에 그쳤을지 모를 일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람쥐 연구자, 곤충학자 등의 도움을 얻어 동식물에 대한 지식을 깊이 있게 소개한다.

저자는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대장의 위치까지 올라간 세계에서 자비심 많은 독재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알기 위해 뒤뜰 관찰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1년을 투자해 얻어낸 소득은 기대 이상이었다. 뿌리바구미 총채벌레 친치벌레 같은 벌레들, 토끼풀 노란애기괭이밥 조팝나물 같은 식물이 뒤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고백한다.

“이 세계를 탐구하기 전에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물이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뒤뜰에서 평생을 보내더라도 이 800m²의 제국을 관리하기에 충분할 만큼 훈련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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