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겐 독설 안 퍼붓죠… 진짜 팬들 생기면 어떡해요”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안티 팬 10만 양병설을 부르짖으며 KBS2 ‘개그콘서트’의 화제 인물로 떠오른 개그맨 윤형빈. 김재명 기자
안티 팬 10만 양병설을 부르짖으며 KBS2 ‘개그콘서트’의 화제 인물로 떠오른 개그맨 윤형빈. 김재명 기자
안티 팬들 심기 건드려 인기끄는 ‘왕비호’의 윤형빈

일종의 ‘역발상 틈새 개그’다. 팬을 모으지 못하니 안티 팬 시장을 공략한 개그맨이 있다. KBS2 ‘개그콘서트’(일요일 오후 10시 5분)의 마지막 코너인 ‘봉숭아 학당’에서 ‘왕비호’(왕 비호감의 줄인 말)로 출연 중인 윤형빈(28).

그는 스탠딩 개그에서 자리 잡은 ‘호통 개그’에서도 볼 수 없었던 분야에 도전했다.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SS501’ 등 아이돌 그룹 팬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 동방신기 팬 카페인 ‘카시오페이아’를 ‘가시오갈피’로, SS501을 ‘청바지 이름’ 같다고 희화화하더니 ‘소녀시대’의 멤버들에게 ‘니들 학교는 제대로 나가냐’라고 말한다. 덕분에 안티 카페가 5개로 늘어났으며 팬들의 테러를 우려한 ‘생명보험 아줌마’들의 가입 권유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를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본관에서 만났다. 예상과 달리 건방진 왕비호는 온데간데없고 다소곳하고 겸손한 윤형빈이 앉아 있었다. 그의 대사를 활용해 독한 질문들을 던져봤다. “ ”안은 윤형빈의 대사이고, ( )는 기자의 질문.

―“누구?”(아이라인 지우면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 아닌가.)

“그래도 요즘엔 많이 알아보세요. 핫팬츠에 쫄티가 좀 우스꽝스럽죠? 이래봬도 여자친구(동료 개그맨 정경미)와 3일 동안 동대문 돌아다니면서 구입한 건데…. 꼴 보기 싫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려고 했죠. 아이라인은 윤형빈과 왕비호가 다른 사람으로 보이길 바라며 그린 겁니다. 윤형빈이라는 사람은 맨 정신으로 무대에 올라 왕비호처럼 말을 할 용기가 없어요. 28년 평생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해 본 적 없는 걸요.”

―“개콘의 평범남, 너희들이 알던 윤형빈은 죽었어.”(이제까지 존재감이 없었다.)

“맞아요. 원래 목표는 ‘다른 개그맨들을 받쳐주는 개그에서 최고가 되자’였어요. 그래서 2년 동안 ‘내 이름은 안상순’ ‘패션 7080’ 등에서 추임새 넣어주는 조연 역할을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검색창에 제 이름을 쳤더니 ‘안 웃겨’가 뜨는 거예요. 개그맨이 안 웃기다니…. 회의가 들더군요. 그러던 중 어느 날 감독님이 절 부르셨어요. 너도 알을 깰 때가 됐다고. 그렇게 해서 기회를 잡은 게 왕비호예요.”

―“밤길 조심하라고?”(안티 팬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같은 글을 몇 십 건씩 도배하는 건 기본이고 ‘눈을 숟가락으로 파 먹겠다’는 협박까지 이어지고 있어요.(웃음) 하지만 왕비호 개그의 원칙은 인신공격은 안 한다는 거예요. 겉으로 보면 왕비호의 개그는 독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감대 개그예요. 어떤 팬들은 속이 시원하대요. 해당 연예인들에게도 사전에 양해를 구하려 해요. 더 세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해요. 그래도 언급된 연예인들과 우연히 마주치면 미안해서 숨어버리고 싶어요.”

―“날로 먹으려 하면 되니.”(남을 낮춰서 자기가 돋보인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말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무대에 등장하는 3분을 위해 일주일 내내 고심해요. 특히 수위 조절에 많은 시간이 걸려요. 대사를 만들어 놓고도 당사자들이 어떻게 하면 상처를 덜 받을까 고민해요. 정치인들은 왜 안 하냐고요? 그러면 안티가 안 생기고 팬들이 생기니까요.(웃음)”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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