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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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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세계 지성사의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하이데거, 베르그송, 하이네, 프루스트, 쇼펜하워, 졸라, 발자크…. 한 명, 한 명에 대해 한 권을 할애해도 모자랄 이런 인물들을 저자는 한 페이지에도 여러 명씩 언급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갑자기 발자크로, 하이데거로 넘어가는 식의 화법(話法) 때문에 생각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저자의 이야기를 쫓아가게 된다. 집중을 하지 않다간 주제를 놓쳐 버릴 정도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문학, 독문학, 라틴문학, 철학을 전공했다. 독일 각지에서 대학교수를 지냈고 프랑스에서 로만어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시간 추적자들’은 그 수많은 인물을 ‘시간’이라는 공통분모로 엮은 책이다. 저자는 고대 철학자들의 금언 속에서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대문호들의 작품 속에서 시간은 어떻게 다뤄졌는지 구체적 문장을 예로 들며 살폈다. 시간에 관한 신화 속 인물에 대한 소개도 잊지 않았다.
책을 관통하는 화두는 ‘시간은 빠듯하다’는 명제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람은 일찍이 이 사실을 간파한 히포크라테스.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는 그의 말은 후대 학자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사용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나이가 들어서야 현명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한탄했고 임종 때 “우리는 막 살기 시작하자마자 곧 죽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시간은 돈’이라는 은유를 후대에 남겼다.
로마시대 철학자 세네카는 테오프라스토스의 은유를 이어받아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재화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긴다”고 지적했다.
‘빠듯한 시간’을 자각하는 수준을 넘어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다. 졸라의 소설 ‘돈’의 주인공 사카르는 하루 종일 초조하게 시계를 쳐다봤고 단 1분도 잃어버리지 않으려 했다. 그는 말을 천천히 하는 방문객들에게 “이제 빨리 말하라. 나는 끔찍하게 바쁘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 ‘빠듯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극복하라고 과거의 지성들은 주문했을까. 20세기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는 삶에 ‘느림’을 끌어들여야만 무차별한 시간의 파괴력에 대항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2005년 이 책을 쓸 때 저자는 78세였다. 책을 쓰는 동안 이제 남은 날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빠듯함’을 느낀 건 아닐까. 그래서 기억에 저장돼 있던 수많은 인물과 작품을 어느 하나라도 놓치거나 외면하기 아쉬워서 이 책에 모두 쏟아 부은 것은 아닐까.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