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학]전쟁 무기로 길러지는 아이의 자아찾기

  • 입력 2008년 4월 12일 02시 50분


◇ 엔더의 게임/오슨 스콧 카드 지음·백석윤 옮김/492쪽·1만4800원·루비박스

미래의 지구. 여섯 살 엔더 위긴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다. 무조건 아들딸 둘만 낳아야 하는 세상, 엔더는 정부 묵인 아래 유일하게 태어난 ‘셋째’다.

정부가 엔더를 허락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외계의 적 ‘버거’와 싸울 지구 영웅을 길러내기 위해서다.

천재지만 잔혹함이 극에 달한 형 피터, 마찬가지로 영특하지만 유순한 성격의 누나 밸런타인. 정부는 그 두 가지 면을 모두 가진 인물을 원했다. 순수한 마음과 냉혹한 전투 본능을 동시에 지닌 ‘지도자’. 엔더는 그런 아이였다.

일곱 살 생일도 맞이하기 전 군사학교로 보내진 엔더. 상부의 기대대로 그는 타고난 용사였고 지휘관이었다. 주위의 시샘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모든 걸 습득한다.

“지금 여기서 완전히 이겨 놓아야 다시는 덤비지 못한다”는 게임의 규칙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잔인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엔더의 게임’은 독특한 설정의 SF 소설이다. 두 차례에 걸친 외계인 침공으로 말살 위기에 놓인 지구. 인류는 생존을 위해 ‘군대’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사회를 선택한다. 누구나 어릴 때부터 군인으로 키워지는 시대. 그 속에서 주인공은 ‘규율과 자아’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설정이 6, 7세일 뿐 사실 주인공의 행동은 10대 후반에 가깝다. 천재여서 그렇겠지만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청소년’이다. 제도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키워지지만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생기는 나이. 황당한 설정임에도 묘한 설득력을 지니는 건 누구나 겪는 청소년기의 고민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난을 헤치고 성장하는 영웅의 탄생 구조는 뻔하지만 언제나 재밌다.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깔끔한 전개도 나쁘지 않다. 다만 대미를 장식하는 반전이 기대만큼 놀랍지는 않다.

영미권에서는 1977년 출간돼 SF 청소년 소설의 고전으로 통하는 작품. 후속작 ‘죽은 이의 대변인’도 조만간 국내에 선보여질 예정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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