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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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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24) 5단은 지난해 국가 단체 대항전인 정관장배 세계여류바둑선수권대회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기적 같은 5연승으로 한국 팀에 우승을 안겼다.
박지은 9단과 조혜연 8단에게 주목해왔던 여성 바둑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를 보고 팬들은 놀라면서도 즐거워했다. 뒤에선 쑥덕거림도 있었다. 세계 최강인 루이 나이웨이(45) 9단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정관장배에는 루이 9단이 중국 대표로 참가했다. 한국 팀의 네 번째 주자였던 이 5단은 루이 9단까지 이겨 승부를 마무리짓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자신감이 있었어요. 실력으로 루이 9단을 따라잡았다고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루이 9단이 중년에 접어들면서 예전만 못한 듯해요. 하지만 그는 제가 존경하는 기사예요. 승부에서 이겼다고 해도 존경의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그는 자기 실력이 늘었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여류국수전에서 준우승하고 젊은 기사들의 모임인 충암연구회 자체 리그에서 여자로선 유일하게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승급하면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는 정관장배에서 특히 성적이 좋은 이유를 물었다.
“개인전보다 단체전이 맞아요. 무엇을 하더라도 여러 명이 같이 하면 힘을 내는 편이에요. 그래서 한때 1 대 1 승부인 프로기사가 내 적성에 맞는지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는 최근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1-2로 역전패했으나, 오히려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익혔다고 했다.
“예전엔 지면 마음의 상처를 입었어요.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낫지 않았어요. 몇 년 전 중요한 대국을 지고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성수대교를 건너 강남구 압구정동까지 무작정 걸어온 적도 있었어요. 극단적인 생각도 하면서요. 그런데 이번에 여류국수전을 놓치면서 승부에 담담해지는 걸 배웠다고 할까요.”
이 5단은 적극적인 성격이다. 여섯 살 때 스스로 바둑을 배우고 싶다고 부모를 졸라 바둑 인생의 첫걸음을 뗐다. 리더십이 있어 한때 4개 모임에서 회장을 맡기도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데 이 5단이 “제 기사가 신문에 크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을 던졌다. 기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당당하게 답한다.
“부모님이 보시고 좋아했으면 해서요. 상금은 다 드렸는데…. 기사까지 나오면 얼마나 기분 좋으시겠어요. 제 코드가 ‘효’예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