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운명의 신은 언제나 나에게 우호적입니다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01분


‘다음엔 너야’. 그림=노르만 융에, 비룡소
‘다음엔 너야’. 그림=노르만 융에, 비룡소
우리들에게는 태생적인 불안감이나 상실감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일생을 마감할 때까지 불안감이 구성하는 두려움으로 궁지에 몰리거나 정서적 은둔 상태를 겪기도 합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다가와 딴죽을 걸고 달아날 불안의 손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나를 어떻게 맞이해 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합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저 문 뒤쪽 방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내 이름이 호명되고 나는 절뚝거리며 문을 열고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설 것입니다. 아직도 내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위압적인 상황들을 예견하면서 가슴앓이로 뒹굴며 온몸을 겨울 사시나무 떨듯 합니다.

지금 내가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방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지만, 저 문 안에 있는 방의 어두움은 더욱 나를 어둡게 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나를 짓누르고 있는 불안의 정체를 속속들이 밝혀내기란 손쉽지 않습니다. 너무나 초조하고 안달했던 나머지, 건넌방에 버티고 있는 어떤 존재를 나에게 치명적인 대상으로 생각하고 지레 겁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게딱지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혹은 자기 파멸의 길을 향해 제 발로 달려가는 파괴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레짐작 한 가지만으로 겁을 먹고 내 소중한 삶을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불행을 선불해서 헛배가 부를 필요는 없겠지요. 내 차례가 와서 앞에 바라보이는 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또다시 어두운 방이 나타나리라는 짐작은 억측에 불과합니다. 그 문을 열면 햇살이 가득 찬 푸른 정원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어째서 놓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정원에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볼을 어루만져 줍니다. 온갖 꽃이 피어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정원은 나비와 새들로 어우러져 춤과 노래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나는 저절로 즐겁습니다. 음산했던 내 얼굴에는 아름다운 미소가 묻어나고, 콧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내 운명은 스스로 길들이기 나름입니다. 어느 누구도 내 기품 있는 운명을 손안에 틀어쥐고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내 운명은 내가 다스리고 내가 만들어낸 유장한 삶의 열정 위에서만 후퇴와 전진이 가능하겠지요. 그것을 잃어버리면, 나는 백 번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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