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준관/‘구부러진 길’

  • 입력 2007년 9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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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시집 ‘부엌의 불빛’(시학) 중에서》

꽃에서 꽃으로 가는 나비도 갈지자로 팔랑대며 난다. 호수에 내려앉는 가창오리 떼도 둥글게 하늘을 선회하다 내려앉는다. 쉼 없이 낮은 곳 찾아가는 냇물도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간다. 자연은 늘 곡선이다. 우리는 얼마나 ‘반듯한 길 쉽게’ 가려고 노력해 왔는가. 구부러진 길 싫다고 반듯반듯한 바둑판 도시로 나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남보다 빨리 가려는 직선의 길에서 만난 것은 오직 ‘속도’와 ‘상처’가 아니었는가. ‘직선’에서 살던 사람들이 일제히 ‘곡선’을 찾아가는 계절이다. 엄청난 교통난을 감수하면서도 이처럼 고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산과 마을과 어머니를 품고 있는 곳, 그리운 ‘구부러진 길’에 대한 향수가 아니겠는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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