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낯익은 풍경을 지독히 낯선 장면으로…황병승 두번째 시집 ‘트랙과…’

  • 입력 2007년 9월 14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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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로 단숨에 스타가 된 황병승(37) 시인. 그는 시단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미래파’ 논쟁에 불을 붙인 당사자이기도 했다.

황 시인이 두 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제목이지만 시를 보면 역시 ‘시코쿠’다. 표제 시 ‘트랙과 들판의 별’의 몇 구절. ‘이봐 아가씨 삼촌은 말한다 세련을 알고 있니 몰라요 이 세상에 세련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우리는 세련을 생각하기 마련이지 특히 공포의 순간에.’

황 시인은 “첫 시집보다 서사적인 면을 강화했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을 따라 시를 풀어 보면 이런 것이다. 이 시는 한 소녀의 독백인데, 세련되라고 채근하는 삼촌과, 도라도라 댄스를 가르쳐 준 언니와, “네가 내 새끼라니…”라고 지껄이는 아빠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독자는 이게 뭔가, 싶을 것이다. 시인은 그 지점을 정확하게 파고든다.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소녀의 존재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황 시인이 이 소녀를 시에 담은 순간, 지독하게 낯선 장면이 돼 버린다. “일상적인 풍경을 다르게 보려다 보니 비일상적인 ‘사건’이 된 게 아닐까요”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보다는 언어건축(시)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온몸으로 실험한다고 할 것이다.

‘첨단 시’와 ‘이해불가’ 사이에서 미래파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황 시인은 “그간 읽어 온 독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닿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첫 시집은 최근 5쇄를 돌파했다. 독자가 시에서 기대하는 소통을 철저하게 거부한다는 황 시인의 시가 지속적으로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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