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해가 뜨면 무지갯빛 신천지가 열린다

  • 입력 2007년 8월 2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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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8시간 30분. 하와이 제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태평양 타히티(정식 국명은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한 섬을 출발해 목숨 걸고 카누를 저어 여기 정착한 폴리네시안들. 하와이는 그들 말로 ‘신이 있는 곳’이다.

137개 섬으로 이뤄진 하와이.

일년 열두 달 꽃이 피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무지개가 뜨는 ‘지상 낙원’이다. 태곳적 모습의 험준한 산악, 그 산을 뒤덮은 푸른 초목,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

완벽한 자연의 조화 앞에서 인공이 빛을 잃음은 당연하다.

하와이 여행은 대개 아쉬움을 남긴다.

기껏 섬 한두 개만 둘러보는 일정 탓이다.

오아후, 마우이, 빅아일랜드, 카우아이 등 큰 섬 네 개를 둘러보는 크루즈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Pride Of America)’호가 늘 만원인 것은 그 때문이다. ‘세븐 데이즈 세븐 나이트’(7일낮 7일밤) 일정의 하와이 크루즈를 소개한다.》

○유람선에 오르다

오아후 섬의 호놀룰루 국제공항. 하와이 여행은 꽃과 더불어 시작된다. 여행객마다 목에 레이(꽃목걸이)를 걸었다. 상큼한 꽃향기. 비행기 내에서 쌓인 피로가 싹 가신다.

호놀룰루는 하와이의 주도다. 야자수 모양의 기둥 8개가 인상적인 주 정부청사, 하와이 왕가의 영욕이 담긴 미국 내 유일한 왕궁 이올라니 궁전, ‘춘천 닭갈비’ 간판이 보이는 한인타운…. 폴리네시아와 미국, 아시아 문화가 조화를 이룬다. 이어서 찾은 곳은 펄 하버. 1776년 미국 독립 후 2001년 9·11테러 전까지 200여 년 동안 미국이 외국으로부터 공격당한 유일한 곳이다. 당시 이곳에는 태평양 함대의 전함들이 정박해 있었다. 1941년 12월 7일 새벽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 전투기의 기습 폭격으로 함정 12척이 격침되고 2403명이 죽거나 다쳤다.

당시 상황은 전사자 추모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이 기념관은 당시 침몰한 전함 아리조나의 선체를 딛고 있다. 선내에는 침몰 당시 탈출하지 못해 수장된 미군 1177명의 주검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잠자는 거인’을 건드린 대가를 일본은 제대로 치렀다. 영화 ‘진주만’에도 등장했던 도쿄 공습,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 등이 그것이다.

오후 5시 30분. 호화 유람선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가 석양에 물든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1493km의 긴 뱃길이 시작된 것이다. 갑판에 나와 첫 밤을 맞는 여행객들. 배는 별빛 아래 빅아일랜드의 힐로를 향한다.

○하늘을 삼키는 킬라우에아 분화구

아침 8시. 배는 이미 힐로 항에 정박해 있다. 빅아일랜드는 하와이에서 가장 큰 섬. 면적은 제주도의 8배지만 주민 수는 훨씬 적은 15만여 명에 불과하다. 개발이 덜 된 만큼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다. 100여 년 전 사탕수수 농장의 일꾼으로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뎠던 한인 교포의 꿈과 한이 서린 곳도 바로 여기다.

아카카 폭포로 가는 길. 수십 m 높이의 밀림을 지난다. 거대한 해안 절벽으로 둘러싸인 오노메아 베이의 절경도 지난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폭포는 높이 100m를 넘는 초대형이다. 신부의 면사포처럼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절벽을 감싸는 낙수. 일상의 상념과 찌든 마음이 그 물에 씻겨 태평양 바다로 날아가 버린 듯 시원하다.

빅아일랜드는 아직도 화산 활동이 왕성한 섬이다. 진귀한 열대식물로 가득한 나니마우 가든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면 킬라우에아(활화산)가 있는 화산국립공원으로 안내한다. 정상에 있는 분화구는 지름이 무려 4km나 되는 대형 칼데라다. 상공을 유유히 날고 있는 하얀 새 한 마리가 눈길을 끈다. 거칠고 황량한 이 땅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킬라우에아는 지금도 가끔 용암을 토해 낸다. 산 아래로 그 현장이 나타났다. 길가에 펼쳐진 검고 기괴한 현무암 대지는 풀 한 포기 살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다. 거기에도 생명이 숨쉬고 있었다. 오히야 나무다. 불의 여신 펠레가 질투 끝에 내린 저주로 죽음에 이른 한 쌍의 연인이 각각 꽃과 나무로 환생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승에서 못 피운 사랑이 한 그루의 나무와 그 나무의 꽃으로 피어난 셈이다.

빅아일랜드의 해안은 바다로 흘러든 용암이 굳어 이뤄진 검은 절벽의 연속이다. 그 앞에 펼쳐진 가없는 바다와 투명한 하늘, 그리고 하얀 뭉게구름…. 대자연의 경이와 신비가 한꺼번에 다가온다.

○‘마법의 섬’ 마우이

유람선 투어는 낮과 밤이 분명하다. 낮에는 방문지에서 관광을, 잠든 밤에는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그래서 유람선 여행은 매일매일 새롭다.

사흘째 새벽. 해돋이를 볼 생각으로 갑판에 나갔다. 멀리 갈색 띠구름에 둘러진 섬의 고운 자태가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했다. 마우이. 세계적인 골프장과 리조트가 해안을 장식하고 있는 고급 휴양지다.

카울루이 항에 정박한 것은 오전 6시. 갑판에 차려진 야외 뷔페에서 섬 풍치를 즐기며 아침식사를 했다. 헨리 맨시니가 작곡한 아름다운 음악 ‘문 리버’가 잔잔히 흐른다. 뉴욕 중심가 보석상점 ‘티파니’의 쇼윈도에 진열된 보석을 바라보면서 매일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오드리 헵번이 백만장자와의 결혼을 꿈꾸었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온 음악이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다.

이 날은 윈드서핑을 배우며 하루를 보냈다. 장소는 항구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의 해변. 나 같은 ‘왕초보’도 많았다. 강사가 시키는 대로 해 보지만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다. 10m도 전진하지 못하고 보드에서 떨어져 바닷물로 풍덩…. 몸은 고달파도 마음만은 즐겁다. 여행의 묘미란 이런 것이 아닐까.

배로 돌아와 찾은 곳은 12층 갑판의 자쿠지. 하늘의 구름처럼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태양의 집’ 할레아칼라

나흘째도 배는 마우이에 머문다. 이날은 섬 관광이 기다린다. 드넓은 사탕수수밭과 파인애플 농장을 지나 해발 3055m의 할레아칼라 분화구를 차로 오른다. 산허리에 드리운 구름층을 뚫고 굽이굽이 산을 감아 오르는 도로. 분화구에 다다르니 어느 새 하얀 구름이 정원처럼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할레아칼라 분화구의 기괴한 풍경은 외계의 혹성을 닮았다.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 둘레가 무려 33.5km여서 맨해튼도 들어갈 정도다. 분화구 안에 산과 언덕, 계곡이 있을 정도다. 산을 내려와 이아오 밸리로 향한다. 카메하메하 왕이 하와이 8개 섬 통일전쟁을 벌일 당시 마지막 격전지다. 나무마다 희고 붉고 노란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아담한 옛 타운 라하이나는 한때 하와이 왕조의 수도였다. 19세기 스타일의 호텔과 레스토랑이 눈길을 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반얀나무의 그늘은 주민과 관광객들의 휴식처였다.

○평화와 희망의 땅 코나

다섯째 날 아침. 6층 갑판에서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548.6m의 원형 트랙. 푸른 바다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상쾌함은 체험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

배가 닿은 곳은 둘째 날 들렀던 빅아일랜드. 오늘 찾은 곳은 코나다. ‘코나(Kona)’라는 하와이안 커피의 원산지다. 이곳은 수심이 얕아 작은 보트로 상륙한다. 바다는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을 뿜어낸다. 해변은 동화 속에나 나옴 직한 예쁜 집으로 장식돼 있다. 버스로 해안도로를 달리는 내내 하와이 전통음악이 흐른다.

코나에서 들른 곳은 커피 박물관. 커피 플랜테이션의 역사가 담긴 사진과 초창기 원두건조기 등이 전시돼 있다. 집단농장에서 일하던 당시 이민자의 고단한 삶도 엿보인다. 당시 그들에게 커피는 희망 그 자체였다.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배로 돌아가는 버스에는 다시 음악이 흐르고 차창 밖의 녹색 정원이 점차 비에 젖는다. 나그네의 마음엔 평화가 깃든다.

○태평양의 그랜드 캐니언

여섯째 날 아침. 잠을 깨니 카우아이 섬이 서서히 다가온다. 섬 전체가 정원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정원의 섬’이란 별명이 붙었다. 섬에는 야자수보다 높은 건물이 없다. 4층 이상 건축을 규제하기 때문이란다.

나윌리윌리 항구에 내려 버스로 와이메아 협곡을 찾았다. 작가 마크 트웨인이 ‘태평양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렀던 이곳. 폭 1600m에 깊이 1080m의 협곡이 22.5km나 이어진다. 보기만 해도 현기증 나는 절벽에는 곳곳에 폭포(23개)가 걸려 있다.

협곡을 내려오니 해안 저 멀리 섬 하나가 보인다. 니이하우라는 곳으로 순수 혈통의 폴리네시안 주민들만 산다고 한다. 1864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빈슨 가문이 사들인 개인 섬인데 원주민들은 자동차는 물론 전기도 없이 문명과 등진 채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와이메아 해안도로를 따라 포이푸 비치로 가는 도중 물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희한한 풍경이 펼쳐진다. ‘스파우팅 혼(Spouting Horn)’이다. 용암대지 아래로 뚫린 터널로 파도가 들이닥치면 그 압력으로 고였던 물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분출된다.

포이푸는 카우아이 섬 최고의 리조트. 코코넛 나무로 수놓인 해변을 따라 들어선 아담한 빌라들이 그림엽서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신이 빚은 조각품 나팔리 해안

일곱째 날. 역시 카우아이 섬이다. 이날은 와이알레알레 산(해발 1570m)으로 밀림 하이킹을 떠났다. 이곳은 영화 ‘쥐라기 공원’의 촬영지다.

카우아이 섬에선 1933년 이후 70여 편의 영화가 촬영됐는데 ‘킹콩’ ‘고질라‘ ‘식스 데이 세븐 나이트’도 이 목록에 들어 있다. 4륜 구동 자동차로 도착한 곳은 오파에카아 폭포.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 ‘블루 하와이’의 한 장면을 장식한 명소다. 포장도 안 된 열대우림 속 길을 걷는다. 간간이 흩뿌리는 소나기는 감미로운 생명수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멀리 산봉우리 아래로 폭포 네 개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와이알레알레 산은 카우아이 섬의 심장. 때 묻지 않은 태곳적 자연이 간직돼 있다.

오후 2시. 이 섬의 나팔리 해안을 향해 배가 출항했다. 3시간 가까이 항해하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장구한 세월 비바람에 깎여 다듬어진 해안 절벽의 오묘한 모습 덕분이다. 수면 위로 1000m나 치솟은 수직절벽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의 절묘한 조화. 21km나 펼쳐진 해안 비경은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오늘은 크루즈 여행의 마지막 날. 오후 6시쯤 유람선은 호놀룰루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이 밤이 지나면 7일 낮 7일 밤의 황홀했던 하와이 크루즈는 막을 내릴 터이다. 아쉬움이 사람들을 더 바쁘게 만든다. 마지막 선상의 밤을 환상으로 꾸미기 위해.

하와이=김사중 기자 sak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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