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윤희상 ‘소를 웃긴 꽃’

  •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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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웃긴 꽃 - 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 시집 '소를 웃긴 꽃'(문학동네) 중에서

꽃이 소를 들어 올리다니 동화 같은 상상력인가 싶은데 가만, 저것은 실제가 아닌가? 들판에 풀(꽃)이 있는 한 소는 결코 맨 땅을 밟을 수 없다. 납작 엎드리긴 했어도 풀이 온몸으로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먹이사슬에서 생산자인 풀은 1차 소비자인 소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뿔이 된다. 소가 풀을 밟고 선 저 단단한 네 굽도 실은 풀로 된 것이다. 풀이 없다면 저 큰 짐승도 맥없이 쿵 쓰러질 것이다. 소뿐이랴,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도 살아서 울거나 웃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풀잎에 매달린 한 마리 풀여치다. 저 철부지 웃는 소도 그걸 알긴 알 것이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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