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조소프라노 이은주 씨 “흑인 영가는 우리네 恨같아”

  • 입력 2007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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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미국에서 미국 음악팬을 겨냥해 흑인영가 음반을 냈다.

러시아에서 성악을 공부한 뒤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메조소프라노 지민 리(이은주·사진) 씨는 최근 미국의 재즈 및 종교음악 전문 음반사인 트윈즈 레코드를 통해 흑인영가 음반 ‘심플리 솔풀(Simply Soulful)’을 냈다. 이 음반에는 전통적인 흑인영가와 함께 한국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지라’도 포함됐다.

미국 음반시장에서 동양인이 흑인영가 음반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특유의 발성과 창법 때문에 흑인영가를 외국인이 제대로 부르긴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고교 시절 다니던 교회 목사님에게서 흑인 소프라노 제시 노먼의 CD를 선물로 받은 것이 계기가 돼 흑인영가를 좋아하게 됐어요. 몇천 번은 들었을 거예요. 악보도 없이 가사를 통째로 외웠어요.”

미국에 와서는 흑인영가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뉴욕 할렘과 브루클린의 흑인교회에 다니면서 성가대 활동을 했다. 2003년 유엔에서 열린 9·11테러 2주기 추모공연장에서도 흑인영가를 불러 갈채를 받았다.

지금은 흑인들에게서 ‘눈을 감고 들으면 흑인이 부르는 것으로 착각할 뻔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됐다. 음울한 음악이 특징인 러시아에서 공부한 경험 덕분에 ‘지민 리 흑인영가’에는 또 다른 맛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래 부르다 보니 이제 흑인들의 피 속에 흐르는 슬픔을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의 ‘한’과도 비슷한 정서라고 할까요?”

그는 “겉으로 드러난 차별은 없어졌지만 흑인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선 차별을 받아 온 서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현대사의 질곡을 지닌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정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할렘침례교회 합창단과 미국 굴지의 연주가들이 함께 참여한 그의 음반은 9월부터 스타벅스 매장과 미국의 서점 체인인 반스앤드노블에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이달 중 독일 등 유럽 공연도 예정돼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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