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新천재론]<18>소녀 도예가 박예서 양

  • 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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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시 한국도예고 작업실에서 자신이 만든 ‘개미집’을 살펴보고 있는 한국도예고 2년 박예서 양. 작품 ‘개미집’은 무리지어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떼를 보고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해 만든 것이다. 이천=이광표  기자
경기 이천시 한국도예고 작업실에서 자신이 만든 ‘개미집’을 살펴보고 있는 한국도예고 2년 박예서 양. 작품 ‘개미집’은 무리지어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떼를 보고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해 만든 것이다. 이천=이광표 기자
최근 경기 이천시의 한국도예고를 찾았을 때, 2학년생 박예서(17) 양은 작업실에서 도예 작품 한 점을 손질하고 있었다. 작품의 이름은 ‘개미집’. 그릇은 그릇인데 그 모양이 특이했다. 세로로 절반을 뚝 잘라 놓은 모양에, 안쪽은 미로처럼 돼 있고 바깥쪽 표면은 작은 칼집이 무수히 나 있었다. 눈에 익숙한 고려청자 모양의 작품이나 현대적 분위기의 사각 꽃병 등 주변에 놓여 있는 다른 작품들과는 그 형태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고2 학생의 도예 작품 치고는 ‘상상력이 대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박 양의 설명.

“어느 날 갑자기 땅바닥에 몰려다니는 개미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데요. 개미집 내부의 모습과 집 밖에서 돌아다니는 개미들의 모습을 한꺼번에 표현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은 개미떼, 안쪽은 개미집 모양으로 한번 해본 건데요.”

박 양이 처음 도예를 접한 것은 대구 고산중 1학년 때였다. 우연한 계기로 자기 공방을 다니면서 순식간에 도예에 빠져 들었다.

“그때, 자기 공방 선생님이 가마에서 자기를 꺼내는 모습이 너무 멋졌습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질 자기를 보니 마음이 설레고 깨끗해지더라고요. 가마 밖으로 빠져나오는 따뜻한 온기도 너무 좋았습니다.”

예술고에 진학해서 성악을 전공하려 했던 박 양은 도예의 매력이 너무 강해 이천의 도예고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자 박 양을 위해 온 가족이 아예 대구에서 경기 남양주로 이사를 했다.

도예를 시작한 지 5년째. 박 양은 올해 상반기에만 원광대, 한국전통문화학교 등 대학이 주최하는 전국 청소년 도예 공모전에 4차례 잇달아 입상하면서 한국 최고 도예가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

○ 두려움을 모르는 종횡무진 상상력

땅바닥의 개미를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것처럼 박 양은 늘 공상과 상상을 즐긴다.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박 양은 “외계인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박 양의 과감한 상상력은 집에서 요리할 때 잘 드러난다. 주말에 남양주의 집에 오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재료와 양념을 섞어 기발한 방법으로 요리를 한다.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 천미선 씨는 이렇게 말한다.

“코코아에 알지도 못하는 뭔가를 섞기도 하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보기도 하고,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해놓고 보도 듣도 못한 음식을 만드는데 글쎄 그걸 먹어 보면 맛있더라고요.”

박 양은 이렇게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을 과감하게 즐기는 성격이다. 그래서 개미집을 작품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도 나올 수 있었다. 이 같은 대담한 상상과 공상에 대해선 담임교사와 도예 전공 교사 모두 이구동성이다. 남진영 도예 교사는 “작품 제출 마감 시간이 다 되었을 때 그냥 내도 점수가 잘 나올 텐데 맘에 들지 않으면 그걸 부수고 또 다른 상상력으로 새 작품을 만들곤 한다”고 말했다.

○ 폭넓은 아날로그적 관심

공상과 상상을 잘하려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일단 소재가 많아야 좀 더 풍부한 공상과 상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난무하는 요즘, 놀랍게도 박 양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으러 다닌다. “디지털 카메라가 화소 수 올리는 데만 집착하는 게 싫증이 난 데다 필름 카메라로 초점 맞추고 조리개 조절하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박 양. 그래서인지 컴퓨터도 싫어하고 디지털 속도 전쟁도 싫어한다.

박 양은 필름 카메라로 자신의 작품을 촬영하면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사진을 찍다 보면 제 작품을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잘된 것도 보이고 잘못된 것도 보이고, 제 도예에 대한 일종의 비평 작업이라고 할까요.”

필름 카메라 등 아날로그에 대한 박 양의 호감은 마라톤과 같은 긴 호흡의 도예 세계에 참 잘 어울리는 성격이다.

박 양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물론이고 신문도 매일 꼼꼼히 읽는다. 특히 학교 기숙사에서 개인적으로 신문을 구독할 정도다. 박 양에게 있어 신문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면서 상상력의 바탕이 된다. 박 양은 “1면부터 끝까지 거의 다 기사를 읽으면 어휘력도 늘어나고 무언가에 대한 개념 파악도 잘되고 또 생각의 소재, 작품의 아이디어를 많이 찾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 여유와 열정이 가득한 미완의 대기

박 양을 인터뷰하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유와 열정이었다. 표정이 그렇게 밝고 차분할 수가 없었다. 그의 진정한 재능은 즐기면서 도예를 한다는 점,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특징은 현재보다도 훗날 더 빛을 발할 재능이다.

도예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다. 도자기 만드는 과정이 고단하고 어렵다는 말이다. 게다가 작품을 만들어 가마에 넣고 굽는다고 해도 실패율이 상당히 높아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 어려운 과정이지만 박 양은 늘 즐겁고 열정적이다. 남 교사는 이것이 바로 박 양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열정이 강한 학생은 처음입니다. 예서보다 손재주가 좋은 학생은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좋은 결과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학생은 예서입니다. 아주 열정적인 데다 늘 행복한 표정으로 즐기면서 도예를 하기 때문입니다. 기대해 보십시오.”

박 양의 꿈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도예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도자 전통 위에 과감하고 새로운 창의력을 불어넣어 세계에서 통하는 자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문화는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고 곧 쇠퇴해 버린다.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자기가 필요하다”면서 미래의 꿈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 나가고 있는 박 양.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날 저녁, 박 양에게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오늘 인터뷰하시느라 수고하셨고요. 기자님 질문이 저에겐 배움이었습니다.”

남 교사의 말대로 박 양은 한국 도예계를 이끌어 갈 ‘미완의 대기’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재능이 더욱 빛나는, 그런 미완의 대기.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박 양 상상력의 원천

박예서 양의 풍부한 상상력과 뜨거운 열정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영향 받은 바 크다.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박 양에게 늘 원대한 꿈을 갖도록 격려해 주고 은행에 다니는 아버지는 올바른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박 양이 대구 고산중에 다니던 시절, 도예에 매료되어 멀고도 낯선 경기 이천 땅의 한국도예고로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흔쾌히 이를 허락해 주었다. 딸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어머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 못할 것이라면 딸아이가 원하는 분야를 하도록 돕는 게 훨씬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박 양이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 두는 스타일이었다. 대신 그 분야에서 원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마련해 주었다. 대구에서 경기로 기꺼이 이사를 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또 자기를 만드는 한국도자기 회사가 어떤 곳인지 관련 정보도 알려 주었고, 도예 강국 일본 이야기도 자주 해 주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언해 주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종종 얘기를 나눈다. 그래서인지 박 양은 올해 도예고의 학생회장을 맡았다. 박 양 어머니의 가정교육은 이처럼 전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되 성취욕을 자극하는 식이다.

박 양 가정교육의 또 다른 특징은 검소한 생활과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경계해 박 양이 어릴 때부터 유명 브랜드 옷이나 신발은 절대로 사 주지 않았다고 한다.

박 양은 “중3 때 아버지가 ‘한 사람이라도 남을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것이 삶의 진정한 성공’이라고 하신 말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 말씀에 감화를 받은 박 양은 자기 공예를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도예 작업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 말만 생각하면 즐겁고 힘이 난다고 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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