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하 씨 새 장편 ‘능라도에서 생긴 일’ 출간

  • 입력 2007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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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사진) 씨를 만난 날은 그의 일흔 번째 생일(7월 4일) 다음 날이었다. 일찍이 시인 김정환 황인숙 씨 등이 큰 잔치를 준비하겠다고 나섰지만 “늘 청년인데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친 터다. 그 대신 그가 운영하는 대학로 카페 ‘마리안느’에서 소박하게 놀기로 했는데, 소식을 듣고 온 지인들로 카페가 가득 찼다.

생일날 그는 새 장편 ‘능라도에서 생긴 일’(세계사)을 출간했다. 소설집 ‘독충’ 이후 6년 만의 신작이다. 청바지에 벙거지를 눌러 쓰고, 젊은이들과 어울려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대개 젊은이들이 더 좋아하고), 시와 소설과 그림을 마음 내키는 대로 넘나드는 작가. 영화평론집도 내고 직접 부른 노래를 CD로 내기도 한 재주꾼. “늦었지만 축하드린다”는 말에 “어디 가면 ‘아버님’ 소리 듣고 전철에서 자리도 비켜 주는 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능라도에서 생긴 일’도 그런 열정에서 나왔다. 자료를 찾는다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괜찮은 사이트를 발견했다. 이 씨는 그곳에 글을 올리면서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오프라인 모임도 종종 가졌다.

“사람들이 현실에선 잘 어울리질 않는데 인터넷에서 소통을 하더라고요. 그 가상 모임이 시간이 지나서야 실제 공간으로 옮겨오고. 흥미로웠습니다.”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된 소설은 ‘능라도’라는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엮었다.

‘이제하’ 하면 환상성부터 떠오른다. 꿈, 몽상 등으로 얽힌, 불온한 이미지로 충만한 소설을 써 와서다. 그런데 ‘능라도…’는 전과 달리 대단히 현실적이다. ‘능라도’ 오프라인 모임에 우연히 권총 한 자루가 주어지고, 그 총을 서로 돌려 가지면서 저마다 숨겨 놓았던 상처가 드러난다. ID ‘은박지’는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아 제주도까지 내려가 허공에다 총을 발사하고, ID ‘풍란’은 열렬한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속물이 돼 버린 남편을 총으로 죽이고 싶어 한다. 이렇듯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짚은 데 대해 이 씨는 “카페를 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가 도드라지더라”라고 답했다.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 윤이형(필명) 씨가 그의 딸이다. 문학의 길을 택한 딸을 성원하다가도, 도시에서만 자라 땅 냄새, 사람 냄새를 모를까 싶어 걱정도 된다.

“그래도 평론가들 사이에선 좋은 평을 받대요”라며 자랑스러움을 드러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중산층의 죄의식을 그린 장편을 쓸 거고, 미(美)의 근본을 탐색하는 장편을 쓰고, 또 두어 편 더 쓸 겁니다”라면서 여전한 열정을 내보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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