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희]‘요즘 젊은 것들…’ 참 괜찮다

  • 입력 2007년 7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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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요새 젊은 것들은…’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젊은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요새 젊은이들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새삼 생각해 보면 분명 ‘세대 차’라는 것이 있다. 우선 매 학기 첫 시간에 들어가면 학생들의 외모가 눈에 거슬릴 때가 많다. 멀쩡한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거나 남학생들도 귀걸이를 하는 건 보통이고 강의를 들으면서 음료수를 홀짝홀짝 마시며 빤히 쳐다보질 않나, 수업에 늦어도 당연하다는 듯 슬슬 걸어 들어오고, 가슴이 너무 많이 파인 옷을 입는 등 나의 ‘구세대적’ 통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많다.

봄학기에 가르치는 ‘영문학개론’ 시간에 나는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이라는 단편을 읽히곤 한다. 그 단편은 팔십 노인이 혼자 카페에 앉아서 술을 먹고 있는 것을 두 명의 웨이터―한 명은 늙고 다른 한 명은 젊은―가 바라보며 이 노인에 대해 아주 대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주제 토론을 시키기 위해 나는 조별로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의 차이’를 적어 내게 하는데, 영어로 쓴 내용이지만 학생들 특유의 구체적 예와 내용이 재미있어 우리말로 옮겨 본다.

학생들의 예리한 세대차 분석

젊은 사람들은 청바지를 입고 늙은 사람들은 빨간 넥타이를 맨다/젊은이들은 할 일이 많아 빨리 걷고 늙은 사람들은 그저 걷는 것을 즐기면서 천천히 걷는다/젊은이들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노인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젊은이들은 낭만적이라 비 오는 날을 좋아하고 노인들은 관절염 때문에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젊은 사람들은 연상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늙은 사람들은 연하의 여자만 좋아한다/젊은 사람들은 컴퓨터가 없으면 못 살고 노인들은 TV가 없으면 못 산다/젊은 사람들은 헤비메탈을 좋아하고 늙은 사람들은 발라드를 좋아한다/젊은 사람들은 친구를 군대에 보내지만 노인들은 친구를 천국에 보낸다….

이런 구체적인 예 외에 좀 더 기본적으로 구세대를 비판한 예도 있다.

젊은이들은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하지만 늙은 사람들은 운명에 복종한다/젊은이들은 이상적 세계를 꿈꾸지만 노인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젊은이들은 정직하지만 구세대는 가끔 위선적이다.

그러나 구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존경심도 결코 잊지 않는다.

노인들은 몸은 약해도 정신은 강하지만 젊은이들은 몸은 강해도 정신력이 약하다/노인들은 자신감이 없지만 그것은 삶의 슬픔과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항상 ‘내 젊었을 때는’이라고 말을 시작하는 게 끔찍하지만 그들이 삶에 대해 많이 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도대체 패션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너무 가난하게 살아 옷을 살 여유가 없어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다/젊은이들은 경솔하고 경박하지만 노인들은 현명하고 사고가 깊다/젊은이들은 먼저 행동하고 후에 사고하지만 노인들은 생각하고 나서 행동한다/노인들은 삶의 기다림에 익숙해 인내심이 깊지만 젊은이들은 성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채 스물이 안 된 학생들의 세대 차 분석은 한마디로 재미있고, 명쾌하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상한(?) 외모처럼 이상하지 않고 참 건강하다는 것이다. 사실 세대 차의 문제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고부터 생겼을지 모른다. 일설에 의하면 알타미라 동굴 속에도 “요새 젊은이들이 너무 버릇없고 성숙하지 못해 큰일이다. 미래가 걱정이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미래가 걱정될 정도로 그때의 젊은이들이 성숙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고 보통 학기 초에 ‘이 애들을 데리고 한 학기를 어떻게 지내나’ 하며 한숨을 쉬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그건 노파심이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각기 비전과 고뇌가 있고 건설적인 사고를 하는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그들의 자유분방함과 생기발랄함, 황당무계함에 울고 웃던 한 학기를 다시 추억 속으로 접으며 난 생각한다.

이상한 외모(?) 뒤의 건강한 그들

1970년대 미니스커트에 장발이 풍기 문란이고 ‘이상한’ 모습이라고 경범죄로 잡혀 가며 ‘요즘 젊은 것들은…’을 귀 따갑게 듣던 게 바로 우리 세대인데, 그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나 젊었을 때는…’으로 말을 시작하니 참 세월 한번 빠르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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