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품 떠나는 여덟 살의 용감한 항해

  • 입력 2007년 6월 12일 02시 59분


여덟 살이 되면 아이들은 그때까지 겪지 못한 다양한 환경 변화에 직면한다. 우선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어른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또래 친구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사물을 지각하는 데 자기를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성은 감소하는 대신,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해 어른들이 지시하거나 혼낼 때에도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또 스스로 깨닫고 행동하는 능력이 발달하기 때문에 반항을 하기도 한다.

아직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추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성인같이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판단력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8세 이후에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능력이 싹트기 시작하므로 학습도 이에 맞춰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원리를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질문할 때마다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흥미를 가지고 적절히 대답해 줘야 한다.

시공간 구성 능력을 담당하고 학업 성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뇌의 ‘마루엽(두정엽)’이 발달하는 때라 퍼즐게임이나 블록 조립 같은 놀이가 좋으며 언어 능력과 기억 기능을 담당하는 ‘관자엽(측두엽)’이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구구단같이 앞으로 공부하는 데 필요한 기본지식을 암기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모든 변화를 아이는 두렵게 느낄 수 있다. 부모 품을 떠나 학교에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정서적 안정감을 갖도록 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이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은 결국 부모와의 안정된 애착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가 집 밖 세상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키워 주어야 한다. 여덟 살 아이들은 부모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갖고 싶어하면서도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계속 엄마의 품에 의존하고 싶은 욕구도 함께 느낀다.

불안한 부모는 불안한 아이를 만든다. 자녀가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할 때 부모가 얼굴 표정이나 말과 행동으로 어떤 신호를 보내느냐에 따라 불안하고 의존적인 아이가 되기도 하고, 독립적이고 자신감 있는 아이가 되기도 한다.

여덟 살 아이들은 부모들이 보기에 말을 안 듣고 반항하는 행동을 자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부모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물론 부모나 교사 등 권위적 대상에 대해 심하게 반항적이고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 ‘적대적 반항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지기도 한다.

반항장애에 해당되는 아이들은 한 번 지시해서는 따르지 않고 핑계를 많이 대며, 어른들과 언쟁을 자주 하고, 공격적인 말을 많이 한다. 일이 잘못되면 남의 탓을 하고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다. 청개구리 같은 행동을 심하게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 때문에 반항장애 아이를 둔 부모의 경우, 참다가 결국 폭발하게 되어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진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하는 것은 부모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을 좌절시킨다고 해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아이는 부모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배’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한다. 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정성을 다해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야겠지만, 그 배가 바다로 나아가 멋지게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까지 항해하는 모습도 즐겁게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파도나 암초를 만날까 두려워서 배를 항구에 정박해 두는 것은 배의 정체성에 위배되는 일이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안전한 항구에서 배를 출항시켜라. 돛에 무역풍을 달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고 말했다.

부모는 어느 시점이 되면 자녀를 품 안에서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도록 도와줘야 한다. 여덟 살이라는 시기야말로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세상이라는 대양을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다.

신민섭 서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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