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베스트셀러]서울 신림동 고시촌 ‘광장 서적’

  • 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2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속칭 ‘고시촌’에서 3년째 행정고시를 준비 중인 박모(31)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서점에 들러 1시간쯤 책을 본다. “고시 책은 지루해서 다른 책을 보며 쉬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는 그가 최근 읽은 책은 과학전문 저술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2’였다.

일분일초가 아까울 고시생들이 무슨 책이냐 싶겠지만, 때로 문자로 인해 생긴 피로는 문자로 해독해야 하는 법이다. 고시촌에서 유일하게 단행본을 판매하는 광장서적에 들어서면 서가 앞에서 책을 훑어보는 고시생들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 만난 황모(39) 씨는 대기업에 8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뒤 6년째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머리를 식히러” 가끔 서점에 들르는 그가 주로 펼쳐드는 것은 심리학 책과 자기계발서. 최근에는 ‘오체 불만족’의 지은이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를 쓴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 하버드 경영대 교수들의 마지막 강의를 엮은 ‘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했다.

기나긴 공부에 고시생들의 마음이 시달린 탓인지, 삶의 위안을 주는 책들이 이곳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는 게 특징이다. 광장서적에서 매달 판매 1위는 기독교 잡지인 ‘생명의 삶’이 차지한다. 직원 송미순 씨는 “고시생들이 공부하는 게 힘이 들어 종교에 많이 의지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긍정의 힘’ ‘목적이 이끄는 삶’ ‘내려놓음’처럼 종교인이 쓴 자기계발서, 에세이 등은 최근 6개월 동안 날마다 5권가량 나갔다.

‘남자들의 몸 만들기 4주 혁명’이나 ‘옥주현처럼 예뻐지는 다이어트&요가’ ‘원정혜의 힐링요가’처럼 혼자서 건강을 관리할 때 요긴한 실용서도 이곳의 베스트셀러다.

고시촌에서 10년 가까이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도 있다. ‘설득의 심리학’은 10년 전 초판이 나왔지만 지금도 하루 3∼5권씩 팔린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도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많이 찾고, 학원 교재로도 사용돼 7년째 장수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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