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日추리소설 ‘이유’

  • 입력 2006년 11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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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대한민국에서 집은 주거 공간 이상이다. 어느 지역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를 소유했느냐가 부의 척도이다. 혹자는 국내의 부동산 사태를 19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 버블에 빗대어 우려한다. 부동산 문제에서 도쿄와 서울은 분명 닮은꼴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대모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청어람미디어)는 도쿄의 초호화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가족 4인 살해사건’을 다룬 사회추리물이다. 사건의 무대인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는 도쿄형 타워팰리스로, 모든 서민의 목표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제아무리 근면한 샐러리맨이라도 봉급만으로 도심의 아파트를 구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고이토 노부야스와 시즈코 부부는 거액을 대출 받아 뉴시티 2025호를 구입하지만 결국 대출의 압박에 시달리다 못해 아파트를 법원 경매로 넘기고 만다.

그러나 여전히 고이토 부부는 2025호를 포기하지 못하고, 경매를 통해서 집을 구입한 사람이 들어올 수 없도록 일명 ‘버티기꾼’을 고용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버티기꾼으로 고용된 ‘스나가와 일가’가 몰살당한다. 어이없게도 스나가와 일가는 가짜 가족으로 밝혀진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며, 왜 살해됐을까.

소설은 사건이 종결된 시점에서 출발해 살인사건을 둘러싼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는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진행된다. 살인은 극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간 최대의 비극이다.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살인의 조건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당신은 어디서 태어나 누구 손에 자랐는가. 누구와 함께 자랐는가. 그것이 과거이며, 그것이 인간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만든다. 그래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진원지 없는 지진은 없다. ‘어쩌다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 진원지를 추적하는 것이 ‘이유’의 전개 방식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에는 셜록 홈스나 파이로 번스같이 매력적인 명탐정이 등장하지도 않고, CSI식의 완벽한 증거나 밀실도 없으며, 그 흔한 반전도 없다. 미야베 미유키는 ‘범인은 바로 너’라는 식으로 명쾌하게 퍼즐 풀기를 끝내지 않고, 일본 사회 전체를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는다. 이 때문에 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후에도 얼얼하고 섬뜩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겉으로는 경제대국의 이미지가 굳건한 일본. 그러나 버블경제 붕괴 이후 급속도로 가치체계가 무너져 버린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은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부동산 버블, 입시 과열, 고령화 사회, 가족 해체 등은 모두 한국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죽거나 죽일 수밖에 없는 소시민적 인간 군상은 전부 우리를 비추는 거울처럼 생생하다. 그야말로 21세기형 ‘인간 희극’에 빗댈 만하다.

이 작품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999년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작가로서 미야베 미유키의 스펙트럼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방대하다. 명랑추리, 사회추리, 게임소설, SF, 판타지 등 장르를 마음대로 넘나들면서도 할 말을 다 한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다. 바로 이것이 미야베 미유키를 읽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한혜원 KAIST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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