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최영철 ‘어느 날의 횡재’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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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횡재 - 최영철

시장에 들어서며 만난 아낙에게 두부 한 모 사고

두부에게 잘게잘게 숨어든 콩 한 짐 얻고

주름투성이 꼬부랑 할멈에게 상치 한 다발 사고

푸른 밭뙈기 넘실대며 지나간

해와 바람의 입맞춤 한 아름 얻고

시장 돌아나오며 늘어선 아름드리 조선 소나무

어깨 두드려주는 덕담 한 마디씩 듣고

자리 못 구해 그 아래 보따리 푼 아지매

시들어가는 호박잎 한 다발 사고

호박이 넝쿨째 넝쿨째 내게로 굴러 들어오고

하루 공친 공사판 박씨 무어라 시부렁대는

낮술 주정 한 사발 얻어걸치고

아줌씨가 받아먹을 잘 달구어진 욕지거리

무단히 길 가던 내가 공으로 받아먹고

성난 볼때기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저물녘 해

내 뒷덜미에 와서 편안히 눕고

내일 뜰 해는 저 산동네 입구 강아지 집에 먼저 와 있고

아무렴 그렇게 되로 주고 말로 받고

말로 주고 가마니로 얻고

- 시집 '호루라기'(문학과지성사) 중에서

로또 복권이라도 된 걸까? 횡재를 했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흔들며 걷는 저 시인을 살며시 쫓아가보니, 허름한 비닐봉지에 두부 한 모, 상치 한 단, 호박잎 한 다발이 고작이렷다. 게다가 솔솔 풍기는 이것은 영락없는 홀아비 내음새-. 쯧쯧 혀를 차려다보니, 저 웃음, 저 노래, 저 출렁이는 어깨춤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고 또 찾던 보물이 아니던가? 저 보물을 고작 푸성귀 몇 단 값으로 샀다니 정말로 '횡재'한 것 아닌가? 저 정도의 비용이라면 우리도 날마다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찌푸린 얼굴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보다 '느끼고, 감사할 줄 아는 재주'가 아닌가? 벌거숭이로 태어난 우리에게 이 세상은 그야말로 횡재가 아닌가?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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