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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0월 1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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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탈을 쓴 악마’ 아돌프 아이히만.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그는 정신이상자나 성격 파탄자는 아니었다.
지극히 가정적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단지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14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에게 대중적 명성을 안겨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 책은 나치의 유대인학살 실행을 책임진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부터 사형집행 순간까지 1년여의 취재를 바탕으로 아렌트가 고급 주간지 ‘뉴요커’에 1963년 4회에 걸쳐 연재한 심층기사를 엮은 것이다. 아렌트는 독일 출신의 유대인으로 나치의 학대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쓴 이 기사에 불멸의 명성을 안겨 준 것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아렌트의 저술과 사상을 꾸준히 소개해 온 김선욱 숭실대 교수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 책의 본문에는 딱 한 번, 그것도 맨 마지막 문장에 등장한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진부성이나 일상성으로도 번역되는 banality의 사전적 의미는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을 담고 있지 못해 따분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이 표현은 처음엔 유대인들에게서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의 개념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찬사를 받게 된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포로수용소를 탈출해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다가 1960년 이스라엘 전범 추적자의 손에 붙잡혀 이스라엘로 비밀리에 이송된 세기적 재판의 주인공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그를 반유대주의의 상징으로 삼아 역사의 법정에서 단죄하려 했고,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할 극적 무대로 삼으려 했다.
검찰 측 기소문이 아이히만을 “거의 전적으로 유대인 문제에 관여한 사람, 자신의 역할이 유대인을 파멸시키는 것이었던 사람, 이 사악한 정권(나치)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이 유대인으로 제한되어 있었던 오직 한 사람”으로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세계 언론도 ‘인간의 얼굴을 한 악마’를 보기 위해 취재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그 열기는 2주 만에 식어버렸다.
분명 정신이상자이거나 성격파탄자여야 했을 아이히만은 너무도 멀쩡했다. 그는 나치 친위대 장교이면서도 유대인 여자를 정부로 둘 정도로 반유대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나치의 정강도 몰랐고,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읽지 않았으며 친구의 권유에 등 떠밀려 친위대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뻔뻔함 정도였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한다는 것도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죄는 어떻게 성립하는가. 아렌트가 주목한 것은 상투어와 관용어에 젖어 있는 아이히만의 화법이었다. 학력도 낮고 직업도 변변치 않았지만 나치 독일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던 그는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남발하기 일쑤였다. 처형의 마지막 순간에도 남의 장례식에서 주워섬길 법한 말만 늘어놓았다.
상투어나 관용어는 살아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죽은 말이다. 이런 죽은 말은 현실감각의 상실을 낳는다. 나치가 유대인 학살 관련 용어들을 ‘최종 해결’ 등의 우회적 표현으로 대신한 것도 실제로 그들이 저지르는 일에 대한 현실감각과 판단력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한나아렌트연구회, 한국정치사상사학회, 사회와철학연구회는 14일 오전 10시 서울 경희대에서 아렌트 탄생 100주년 기념학술대회를 통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자체가 악임을 경고한 아렌트 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조명한다. 원제 ‘Eichmann in Jerusalem’(1965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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