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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9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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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과 ‘모아이’라는 녀석이 있다. 머리 맞는 게 못 박히는 것 같다고 해서, 모아이 석상만큼이나 머리가 크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박민규(38·사진) 씨는 신작 장편 ‘핑퐁’(창비)에서 왕따 청소년이었던 이 녀석들에게 지구의 운명을 걸고 탁구 경기를 벌이도록 했다. 계간지 연재 때부터 화제가 됐고 하반기 기대작으로 일찌감치 꼽힌 소설이다.
20일 만난 작가는 소설만큼이나 말씨도, 차림새도 엉뚱했다. 그는 말하자면, “저를 포함해서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수줍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간간이 뜬금없는, 그러나 뼈있는 ‘외계어’를 던졌는데 ‘박민규와 핑퐁’을 설명하기에 족했다.
“카페에서 ‘퍼햅스 러브’가 나오는데… 이런 음악 듣는데 앞에서 누가 맞고 있으면 분위기 희한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핑퐁’의 모티브라고 했다. 매일 두들겨 맞고 돈 뜯기는 왕따 청소년 얘기. “제발 저들을 죽여주소서”라거나 “핼리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게 하소서”라고 비는 것밖엔 할 수 없는 못과 모아이. 세상은 ‘퍼햅스 러브’가 나오는 카페처럼 별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어디선가 무기력하게 당하는 누군가가 있다. 얼마나 무력한지 소설에서는 이들의 대사마저도 깨알만 한 글자로 써 놨다.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인류라는 게.”
그래서 작가는 ‘탁구계’라는 걸 만들었다. 이념이라는 것 때문에 생명을 앗는 전쟁을 벌이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 차별하는 세상이 이해가 안돼서 “이건 분명히 탁구계의 음모”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세계대전은 탁구계에서 함포들끼리 벌이는 탁구 경기 같은 식이다. 우연히 탁구계에 입문해 이 모든 비밀을 알게 된 못과 모아이. 그들 앞에 ‘세상을 결판내기 위한 마지막 경기를 벌여라’라는 임무가 던져진다.
“탁구 잘 칠 만한 위인 찾기도 어렵고… 희망이나 있으려나.”
못과 모아이에게 중책을 맡기기 전 세계적인 위인 중에 지구 대표선수가 누구일지 생각해 봤는데 도무지 없더란다. 고심 끝에 찾은 사람이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인권운동가 맬컴 X. 물러서지 않기로 유명한 이들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완패다. 위인들이 써 온 세계의 역사는 화려했지만 뒤에서 책임을 떠맡는 건 못과 모아이 같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소시민들이다. 아무리 끔찍한 재앙소설도 말미에선 희망을 비춰주는데 ‘핑퐁’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두 녀석만 남겨놓은 채 끝나 버린다. 작가가 보기에 우리는 이토록 비관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냥 탁구로 해 본 건데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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