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07>太倉제米

  • 입력 200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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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이 지구의 주인이고 나아가서는 우주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우주를 놓고 보면 사람의 존재는 작은 티끌만도 못하다.

‘太倉제米(태창제미)’라는 말이 있다. ‘太’는 ‘크다’라는 뜻이다. ‘太平(태평)’은 ‘크게 평안하다’라는 뜻이고, ‘太子(태자)’는 ‘가장 큰아들’, 즉 ‘왕위를 이어받을 황태자’라는 말이다. ‘太陽(태양)’은 ‘세상에서 가장 크게 밝은 것’, 즉 ‘해’를 나타낸다. ‘陽’은 ‘밝다’라는 뜻이다. ‘倉’은 ‘창고’라는 뜻이다. 요즘은 흔히 ‘倉庫(창고)’라고 부르는데, ‘庫’도 역시 ‘창고’라는 뜻이다. ‘제’는 ‘돌피’라는 것인데, 벼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흔히 논밭에서 자란다. ‘제’와 ‘米’를 합친 ‘제米’도 역시 ‘돌피’를 나타낸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太倉’은 ‘크나 큰 창고’라는 뜻이 되고, ‘제米’는 ‘한 알의 돌피’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太倉제米’는 ‘크나 큰 창고 속에 있는 한 알의 돌피’라는 말이 되고, 이는 다시 ‘사람은 크나 큰 창고 속에 있는 한 알의 돌피와 같이 작은 존재’라는 말이 된다. 이는 범준(范浚)이라는 사람의 심잠(心箴)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심잠에서, 사람은 미미한 존재이지만 또한 三才(삼재)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三才는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뜻하는 것으로서, 옛사람은 이것이 세상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라고 생각했다.

돌피와 같이 작은 존재로서의 사람이 세상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범준은 그 이유를, 사람에게는 마음(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에게 마음은 그만큼 중요하다. 선현들은 마음이 육체의 주인이 되는 삶은 훌륭한 삶이고, 육체가 마음의 주인이 되는 삶은 불행한 삶이라고 말했다. 가을이다. 가끔은 여유를 갖고 명상에 잠겨서 우리의 마음이 곱게 보존되어 있는지, 아름답고 깨끗하게 자라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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