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애인과 실제 애인이 혼동된다"…'사이버 연인' 풍속도

  • 입력 2006년 9월 15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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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이 있는데… 새 (게임) 애인이 생겨서 혼란스러워요."

이종원(27·대학생) 씨는 최근 고민이 생겼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게임 마니아인 이 씨는 한달전 여성 누리꾼과 '게임 애인' 사이가 됐다. 실제 사귀는 사람이 있는 그는 "게임 속에서 결혼도 하고 나니 실제 애인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 팬들이 새로운 '사이버 연인' 풍속도를 만들고 있다. 누리꾼들이 각각 역할이 다른 롤플레이 게임을 하는 도중 '애인'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리니지 2의 경우 한달에 1200여쌍(2400여명)이 '게임 연인'을 이룬다. 마비노기 등을 합하면 한달에 2500여쌍의 게임 커플이 나오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서로를 '쟈긔'(자기)라고 부르며 미션을 수행해나간다. 비록 게임 속의 '설정 연인'이지만 위기 상황을 함께 해결해하면서 유대감이 깊어진다고 말한다.

게임 회사들은 이들을 위한 별도 아이템을 내놓고 있다. 마비노기는 게임 속에 결혼식장, 신혼집, 피로연 등 다양한 이벤트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리니지2에서는 연인 반지, 애인 간 텔레포트(순간이동) 기능, 결혼예복 등을 사용할 수 있다. 게임 '아스가르드'에서는 게임 캐릭터에 미혼, 유부남, 유부녀, 재혼남, 재혼녀 등의 호칭도 부여할 수 있다.

게임 애인이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 누리꾼들은 데이트 비용이나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으며 게임에서 서로 의존하는 과정에서 남녀 관계가 오프라인 애인보다 동등해진다는 점을 들고 있다. 게임 안에서 쉽게 '워너비' 인물이 된 상태에서 이성을 만나는 자기 만족도 크다고 말한다.

온라인 게임회사인 넥슨의 윤대근 홍보팀장은 "외모, 집의 위치, 학력 등 현실 잣대의 구속없이 공통의 관심사인 게임으로 만나다보니 서로 더 이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게임의 게시판에는 '게임 애인이 생겨 결혼도 했는데 잘해줄수록 나한테 막 대하기 시작해 고민이다' '게임 애인이 실제 애인과 깨진 것을 아는 순간 기뻤다' '게임을 그만 두고 나서야 게임 애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게임 애인과 실제 애인이 혼동된다." "게임 애인 때문에 실제 애인과 헤어졌다" 등의 글들도 있다.

고려대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는 "게임 애인은 게임이 끝나면 깔끔해지기 때문에 연애할 때 가장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인 '깨지면 어쩌지'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며 "게임 애인에는 자신이 노출되지 않는, 즉 리스크없이 맺을 수 있는 인간 관계를 추구하는 심리가 녹아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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