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완벽한 2등신입니다”…‘굿바디’ 이색 오디션 현장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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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모놀로그를 펼친 연극 ‘굿바디’ 오디션 현장. 사진 제공 쇼노트
여배우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모놀로그를 펼친 연극 ‘굿바디’ 오디션 현장. 사진 제공 쇼노트
“제 가슴, 빈약합니다. 오늘 이 자리도 ‘뽕’ 집어넣고 왔습니다. 며칠 전엔 엄마가 조심스레 가슴 성형을 권유하시더군요. 500만 원이랍니다. 1년에 연극 2편 출연하는 제 수입으로는 어림없습니다. 가슴 사이즈는 키우지 못해도, (이 작품을 통해) 마음 사이즈를 넓혀 보고자 왔습니다.”(가슴 사이즈 ‘75A컵’ 여배우)

“저는 짱돌입니다. 저는 작고, 단단하며, 균형 있고, 완벽한…‘2등신’입니다!(허리를 앞으로 굽혀 몸을 접으며) ‘고이 접어 폴더레라’.”(키 156cm, 몸무게 56kg 여배우)

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는 연극 ‘굿바디(The Good Body)’에 출연할 주연 여배우를 찾는 이색 오디션이 열렸다. 참가 자격은 ‘스스로의 몸을 굿바디라고 생각하는 여배우’. 오디션 과제는 ‘자신의 몸에 대해 솔직하게 1분 동안 이야기할 것’이었다.

이날 참가한 여배우는 모두 44명. 키 173cm에 몸무게 53kg의 ‘섹시 S라인’부터 168cm에 85kg의 ‘쏘리(Sorry) S라인’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털어놓았다.

작은 키(154cm) 때문에 늘 아동 역할만 맡는 것이 싫어 운동화 밑창에 생리대를 겹쳐 넣고 ‘숨어 있는 7cm’를 만들었다는 여배우, 예쁘고 늘씬한 외모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연기해도 늘 섹시하다는 평만 받는다는 여배우, 어릴 때 성추행당한 기억 때문에 자신의 몸이 싫었다는 여배우….

오디션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은 여배우들의 몸 이야기는 6명의 심사위원을 웃기고, 울렸다.

심사를 맡은 이지나 연출은 “오디션 심사는 냉정해야 하는데 여배우들이 그동안 갖고 있던 몸에 대한 고민과 아픔을 들으면서 너무 슬펐다”며 “오디션 자체가 이미 이 연극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 편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굿바디’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유명한 희곡작가 이브 엔슬러의 작품. 여성들에게 ‘내 몸을 억압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임을 일깨우며 “당당해져라, 자기 몸을 사랑해라, 그리고 함부로 고치지 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11월 17일부터 서울 대학로 두레홀 3관에서 공연된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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