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내안의 괴물 파시즘… ‘마왕’&‘나무공화국’

  • 입력 200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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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사카 고타로 지음·김소영 옮김/327쪽·1만 원·웅진지식하우스

◇나무공화국/샘 테일러 지음·이경식 옮김/389쪽·9900원·김영사

《여기 두 명의 섬나라 출신 X세대 소설가가 있다. 1971년 일본에서 태어난 이사카 고타로(伊坂幸太郞)와 1970년 영국에서 태어난 샘 테일러다. 두 사람이 2005년 나란히 발표한 ‘마왕’과 ‘나무공화국’은 우리 마음속 괴물이라는 동일 주제에 대한 변주곡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두 소설의 주인공은 일찍이 고아가 돼 남다른 형제애를 지닌 형과 동생이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괴물’과 대결하지만 사색파인 형은 실패하고, 행동파인 동생은 살아남는다.》

‘마왕’의 형(안도)과 동생(준야)에게 괴물은 일본열도를 사로잡고 있는 우익파시즘이다. 일본이 ‘자학사관’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평화헌법’이란 굴레를 박차고 나서야 한다는, 한국인도 심각하게 염려하는 바로 그 극우 이데올로기다. 이쯤 되면 독자는 제목만큼 묵직한 스릴러를 떠올리지만 바로 그때 작가의 눈부신 블랙유머가 빛을 발한다.

안도와 준야에게 파시즘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렬로 촘촘하게 줄지어 있는 수박씨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을 통일된 행동으로 몰아가는 선동, 그 이상의 섬뜩한 무엇이다. 이에 맞서는 안도 형제의 무기도 기상천외하다. 안도는 30보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해 자신이 생각하는 말을 하게 할 수 있고, 준야는 10개 이내의 선택지를 지닌 도박에서 꼭 이기는 능력을 지녔다. 자, 당신이 이런 능력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파시즘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겠는가.

‘나무공화국’의 형(루이)과 동생(미셸)은 프랑스 남부의 숲에 들어가 자신들만의 자치공화국을 세우는 방식으로 세상과 싸운다. 프랑스혁명에 취하고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성경처럼 받드는 주인공은 루이 형제를 중심으로 한 4명의 십대들. 이들은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실천하기 위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상과 결별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 형제가 직면하는 진짜 괴물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다. 원시적 순수함을 지키려는 이들의 신념공동체는 이소벨이라는 소녀에 대한 형제의 애증이 뒤엉키면서 지옥으로 변한다. 영국 작가 월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괴물은 바로 ‘내 안의 파시즘’이다.

‘마왕’에서 파시즘의 구현체는 미래당의 당수인 이누카이(犬養)다. 젊고 패기만만하고 잘생긴 이누카이는 ‘할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며 거침없는 언행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 그는 “정치인에게 앞날은 곧 노후일 뿐”이라는 말로 기성 정치인들을 공격하고, “나에게 5년만 달라. 그때까지 확 바꿔놓지 못하면 내 목을 자르라”고 젊은이를 선동하는 포퓰리즘의 귀재다.

안도의 주변 인물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이누카이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누카이가 젊은 세대를 휘어잡는 데 반미주의를 교묘히 이용하는 장면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안도는 매스미디어가 토해 놓는 이미지 정치의 이면을 읽어 내기 위해 “생각하라, 생각하라”를 주문처럼 외우며 저항한다. 반면 준야는 오히려 냄비처럼 달아올랐다가 식어버리는 매스미디어와 거리를 둔 채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를 되뇌는 긴 호흡법으로 대항한다. 안도는 실패하고, 준야는 자신을 삼켜버릴지도 모를 도박에 뛰어든다.

‘나무공화국’의 형제도 운명이 엇갈린다. 이상의 실현을 혁명으로 꿈꾸던 루이가 권력을 상실하고 사랑의 실현을 혁명으로 여기던 미셸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나무공화국은 모든 혁명의 종착지인 추락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신념에 대한 충성도로 동료를 재판하고, 그들을 개량시키겠다며 온갖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가하고, 동일한 제복과 언어를 강요하고, 끝내는 자신들의 도덕적 타락에도 무감각해진다.

두 젊은 작가는 말한다. ‘괴물’은 우리의 일상에도, 저 깊은 숲 속에도 숨어 있다. 그리고 괴물은 우리 안에서도 자란다. 문제는 괴물에게 먹히느냐, 아니면 내가 괴물을 먹느냐다. 똑똑한 형들은 그걸 모른다. 순진한 듯해도 영악한 동생들이 그걸 더 잘 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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