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온두라스-엘살바도르 휴전

  • 입력 2006년 7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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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다. 서울시청 앞을 메웠던 수십만 명의 인파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축구는 단지 축구일 뿐’이라고 아무리 다짐해도 축구 한판은 국가 분위기를 확 바꿔 놓는다. 축구를 ‘국가 간 전쟁’이라고 하지 않던가.

축구가 실제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온두라스 대 엘살바도르.

두 나라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진출을 위한 북중미 지역예선 최종전에서 맞붙었다. 1969년 6월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열린 1차전.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호텔 앞에서 밤새 소란을 피운 온두라스 극성팬들 때문이었다. 온두라스의 1-0 승리.

며칠 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열린 2차전. 상황은 비슷했다. 이번에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던 쪽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팬들은 보복이라도 하듯 경기 전날 호텔에 불까지 지르며 난동을 피웠다. 엘살바도르의 3-0 승리.

갈등의 골이 깊어진 두 나라는 2차전 후 국교 단절을 선언했다. 제3국인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최종 3차전. 관중보다 경찰이 더 많은 경기였다. 연장전 끝에 엘살바도르의 3-2 승리.

폭력은 경기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7월 14일 엘살바도르 군대가 온두라스 국경을 넘었다. 개전 초반에는 엘살바도르가 우세했지만 온두라스가 엘살바도르 의 병참선을 차단하는 역공을 펴면서 전쟁은 팽팽한 대치 국면으로 들어섰다.

전쟁이 벌어진 기간은 100시간 정도에 불과했지만 2000명의 사망자와 5만 명의 피란민을 낳았다. 두 나라는 7월 20일 미주기구(OAS)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맺었다. 전쟁은 무승부.

이 전쟁은 축구경기가 도화선이 됐다고 해서 ‘축구전쟁(Soccer War)’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해묵은 민족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땅은 넓지만 가난한 온두라스와 국토는 비좁지만 경제가 발달한 엘살바도르. 많은 엘살바도르인은 국경을 넘어 온두라스 땅에서 무단거주하고 있었다. 1969년 초 온두라스 정부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엘살바도르인 수만 명을 추방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열린 축구경기는 국가적 적대감의 분출구였다.

다시 축구 얘기로 돌아가자. 전쟁까지 치르며 천신만고 끝에 이듬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엘살바도르는 유럽 강팀들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3전 전패, 16강 진출 실패.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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