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투병문학상]최우수상 문경애씨 ‘어느 사이보그의 진술’

  • 입력 2006년 6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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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와 인제대 백병원이 공동주최하고 한국MSD가 후원한 제6회 투병문학상 공모에는 투병 환자와 가족 등 112명이 참여했다. 유명 문인인 신경림 이경자 씨와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센터 의사이자 시인인 서홍관 씨가 심사해 15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최우수작인 문경애(55·부산 동래구 사직3동) 씨의 투병기를 요약해 소개한다. 시상식은 26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저동 서울백병원에서 열린다.》

내 몸 속엔 인공 전자기기가 장착돼 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인조인간처럼 초능력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내 안의 그 인공기기로 인해 생의 벼랑 끝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날마다 새로운 희망으로 달라진 나의 일상을 맞는다. 마당을 쓸고 화분갈이를 하고 시장을 가고…. 남들에겐 하찮은 일이지만 나에겐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희망이며 축복이다.

2004년 하반기. 내 병은 더 심해졌다. 지속적인 근육 수축으로 목 심장 위장 등 온갖 신체 기관이 조여 오기 시작했다.

내 병은 파킨슨병이다. 이 병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의 한 종류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 생기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해 약으로 증상을 완화시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나빠져 결국엔 걷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노인에게 주로 생긴다는 이 병은 1979년, 내 나이 29세에 찾아와 내 삶을 파괴시켰다. 6년 동안 해온 과학교사 직도 그만둬야 했다. 처음에는 약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점점 견디기 어려워졌다. 2003년이 지나면서 건강은 급격히 악화됐다. 오랫동안 약을 먹은 탓인지 이상 운동이 심하게 나타났고 내부 장기에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입이 마비돼 몇 시간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날엔 목이 조여 와서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심장이 조여 와 실신했다가 깨어나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다.

6개월이 지나자 모두가 지치기 시작했다. 우선 나부터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하나하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삶이 여기까지라면 이제 더 삶에 미련을 갖지 말자.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자.’

2005년 2월 16일. 부산지역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뇌심부자극술’을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최근 도입된 수술은 종전과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우선 검사를 받고 수술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입원해 수술하면 됩니다.”(담당의)

뇌심부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은 몸 안에 자극발생기와 전극선을 이식해 파킨슨병 증상과 관련이 있는 뇌의 시상부 등에 전기 자극을 보내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돕는 치료법이다. 다시 말해 몸 안에 심어 넣은 인공기기가 전기자극을 보내 마비된 신체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해 3월 8일 수술을 위해 입원을 했고 마침내 14일 수술을 받았다. 우선 머리를 국소 마취한 상태에서 전극선을 삽입하기 위해 두피를 걷어냈다. 의식이 깨어 있어 심장은 진정할 수 없이 뛰었다. 자극선의 테스트를 마친 뒤 두피 부분을 깁기 시작했고 자극발생기를 이식하기 위해 전신을 마취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나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9시간의 수술이 무사히 끝난 것이다.

퇴원 후 8일 만에 병원에 가기 위해 나서면서 나는 화장을 하고 가발을 썼다. 밖에 나서니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성당의 담장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하루가 상당히 길었다. 내 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들, 자질구레한 집안일부터 2005년 12월31일에는 딸을 결혼시키는 큰일까지 치러낼 수 있었다.

나에게 어떻게 기적이 일어났을까. 우선 놀랄 만한 의학의 발전에 있을 것이다. 또 병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했기에 가능했다. 과학교사였기에 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고 전문의의 처방을 신뢰하고 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한 힘은 사랑이었다. 나의 가족,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나를 지탱시켜 줬다. 사랑이야말로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힘이다.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수상자 명단

▽우수상(2명)=민동현 조평제

▽가작(3명)=김우임 박연미 이지안

▽입선(9명)=김미자 김성국 김은숙 김원영 김정렬 박선영 유명순 이선주 정해영

▼ 심사평 ▼

올해는 본심에 오른 작품들이 투병을 소재로 한 빼어난 문학작품이라 해도 걸릴 게 없는 실력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심사를 한다는 입장을 잊고 글의 내용에 빨려 들어가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했다. 투병문학상이므로 심사위원은 내용의 진정성을 우선으로 삼았다. 아름다운 표현과 화려한 장치들을 통해 상을 받으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작품은 우선 뒤로 밀렸다. 모든 글의 힘은 진정성과 사실성이 우선인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질병을 대하는 태도를 살폈다. 몸은 질병을 통해 말을 한다고도 한다. 질병이라는 이름의 ‘소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점이 중요시되었다. 자기 자신이나 부모 형제 자식의 질병을 ‘절망과 공포’로만 바라보지 않고 거기에 주저앉지 않은 작품들을 높이 사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개인의 투병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건 물론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작품들에 주목했다.

이런 이유로 ‘어느 사이보그의 진술’을 최우수상으로 뽑았다. 27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투병하면서 마침내 얻은 건 ‘사랑의 힘’이라고, 차분하고도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질병을 통해 나약해지지 않았던 모습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상의 등급은 중요하지 않다. 작품 하나하나에 사람과 사랑과 희망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상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했을 모든 응모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행운을 빈다.

신경림 시인·심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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