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다가오는 노출의 계절 “내 이름은 Six Pack”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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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클리닉에서 지방흡입술을 받고 있는 중년 남성(왼쪽)과 JW메리어트 호텔의 한동길 트레이너의 지도로 복근 운동을 하고 있는 탤런트 최승경 씨. 그는 “몸매 만들기에 성공하면서 나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비만클리닉에서 지방흡입술을 받고 있는 중년 남성(왼쪽)과 JW메리어트 호텔의 한동길 트레이너의 지도로 복근 운동을 하고 있는 탤런트 최승경 씨. 그는 “몸매 만들기에 성공하면서 나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식스 팩(Six Pack). 생소한 말이지만 배에 새겨진 왕(王)자 근육을 가리킨다. 남성 건강미의 상징이기도 하다. 권상우 차승원 이정재를 비롯해 최근 인기를 끈 ‘간고등어 코치’의 공통점이 모두 배에 뚜렷한 식스 팩을 새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뱃살은 30대 중반 이후 남성들이 갈수록 통제하기 어려운 부위. 이 때문에 여름 해수욕장에서 티셔츠를 못 벗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여름을 앞두고 바뀌고 있다. ‘노출’을 위한 몸 만들기에 들어간 것이다.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근무하는 엄소민(29·여) 씨는 “한두 달 전만 해도 (헬스클럽의) 남녀 비율이 비슷했는데 요즘엔 수시로 분말 단백질 보충제를 먹어가며 바벨을 들고 근육을 키우는 남성들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남성의 몸 만들기 바람은 성형외과 비만클리닉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이곳에서도 최근 남성 고객이 급증하고 있다. 남성 화장품 가운데 몸 만들기 효과가 있다는 슬리밍 제품도 불티나게 팔린다. 몸 만들기에 뛰어든 남성들의 세계를 살펴봤다.》

○남성들도 모이면 몸매 이야기

LG 경영관리팀의 박치헌(39) 차장은 뱃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여름에 수영복 입을 자신이 없었던 그는 동료의 소개로 몸매 관리에 도움이 되는 슬리밍 화장품을 3개월 전부터 복부에 사용하고 있다.

그는 “여름이 다가오면서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뱃살을 포함한 몸매 관리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며 “화장이나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관리를 고민하는 여성에 비해 몸 만들기는 남성의 ‘자신에 대한 투자나 관리’를 가늠하는 거의 유일한 척도”라고 말했다.

최근 지방 축적을 억제하고 분해에 도움을 준다는 남성 슬리밍 화장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남성 복근 전용 슬리밍 제품인 ‘앱도스컬프트’를 출시한 ‘비오템 옴므’의 이나영 과장은 “지난해보다 매출이 120% 늘었으며 신제품 출시도 고객의 요청으로 두 달 앞당겼다”고 말했다.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헬스보조약품도 잘 나간다. 회사원 지은경(26·여) 씨는 “친구들끼리 얘기하다 보면 근육을 만든다며 점심을 거르고 단백질 보충제만 먹는 남성 동료들이 어느 회사에나 몇 명씩은 있다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남성들이 단체로 운동을 다니는 풍경도 빚어지고 있다. 방송장비업체인 토필드에서는 최근 한 사원이 사내 전산망에 인근 헬스클럽과 계약을 해 운동을 다니자는 글을 올렸는데 여성들은 거의 없는 반면 수십 명의 남성이 직급을 막론하고 순식간에 동참 의사를 밝혀 왔다.

같은 회사의 김현주(28·여) 씨는 “거의 모든 남성 동료가 가수 비처럼 날렵한 근육질의 몸을 만들겠다고 한다”며 “1년 내내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여성과는 달리 여름이 다가오면서 남성들의 몸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 몸 만들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비만클리닉 ‘365mc’. 여성 고객이 많지만 남성 고객도 적지 않다. 전체 고객 가운데 아직 여성이 80%를 차지하지만 남성 고객은 지난해보다 2, 3배 늘었다는 게 클리닉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이한 것은 얼핏 봐도 비만으로 보이는 남성은 한 명도 없다는 점. 오히려 말라 보이는 이도 많다. 김하진 원장은 “강북 지점은 비만인 남성과 비만이 아닌 남성의 비율이 5 대 5 정도인데 강남점엔 80%가 비만으로 볼 수 없는 남성들이 ‘관리’ 차원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3) 씨는 키 180cm, 몸무게 70kg. 비만과는 거리가 먼 몸이다. 그러나 몸매를 드러내는 ‘쫄티’를 입기엔 복부나 옆구리에 자신이 없었다.

빠른 시간 안에 몸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비만클리닉을 선택했다. 지난달부터 4주 동안 지방분해주사와 고주파 치료로 복부의 지방을 줄여 86cm이던 허리둘레를 81cm로 줄였다.

그는 “최근 영화배우 이성재가 말랐지만 탄탄한 근육질로 바뀐 걸 보고 여자 친구가 부실한 남자 친구는 싫다며 강권했다”면서 “요즘 여대생들은 남자 친구의 외모를 가늠하는 잣대로 날씬하면서도 탄탄한 몸매를 가장 먼저 꼽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업을 하는 이모(35) 씨는 잦은 술자리로 1, 2년 사이에 7kg 정도 살이 쪘다. 이 씨는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주위 반응은 달랐다.

처음엔 농담처럼 “몸을 방치한다”며 한마디씩 하더니 “자기 관리를 안 한다”는 소리마저 들었다. 사업 탓에 운동할 짬을 내기 어려웠던 이 씨는 여직원의 권유로 비만클리닉을 찾았다. 이 씨는 “사업 파트너가 ‘남성의 날렵한 근육질이 신뢰감을 준다’고 말한 것이 몸을 만들게 된 계기”라며 “사업 관계에서도 약간 배가 나온 풍채가 믿음을 준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팔 다리 등 전체적인 보디라인에 관심을 갖는 여성과 달리 남성들은 날씬하면서도 탄탄한 복근을 갖고 싶다는 상담이 90% 이상”이라면서 “특히 지난달부터 여름을 앞두고 남성 고객이 늘어나는 비율은 여성보다 3, 4배 높다”고 귀띔했다.

○ 남성에 대한 가치 기준이 바뀌었다

남성들의 멋진 몸에 대한 열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수백만 원대의 고가지만 지방을 흡입하는 수술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 중에는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는 40대 남성들이 많다.

대기업 간부인 정모(48) 씨는 평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 배가 나왔으나 얼마 전 사내에 불기 시작한 몸 만들기 열풍을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는 “간부들 사이에서도 골프 테니스 헬스 등 운동 바람이 불었는데 참여를 안 했더니 대화에 끼기도 힘들었다”며 “남들 하는 만큼 보조라도 맞추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 수술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KBS 1TV 일일드라마 ‘별난 여자 별난 남자’에 조연으로 출연 중인 탤런트 최승경(35) 씨. 2년 전만 해도 맞는 바지가 없어 해외에서 옷을 샀다. 180cm의 키에 125kg. 허리는 40인치가 한참 넘었다. 뱃살 때문에 혼자 양말 신기도 버거웠다.

현재 최 씨의 몸무게는 80kg 중반. 약 40kg을 감량했다. 음식 조절과 함께 1년 정도 헬스클럽에서 땀 흘린 덕분이다. 최 씨는 “적당한 몸매를 만들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감이 살을 빼게 했다”고 말했다.

“체중 감량 후 독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연출자나 동료들이 ‘그 정도 각오면 어떤 역도 맡길 수 있겠다’고 하더군요. 시청자들도 믿음이 간다고 얘기합니다. 몸매 관리는 단순히 외양적인 것만 바꿔 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까지 바꾸더군요.”

‘김형준 성형외과’의 김형준 박사는 “과거 여성들에 대한 잣대였던 몸매나 미용이 경제력과 지위로만 평가받던 남성들에게로 확장됐다”면서 “‘뱃살=부의 상징’이란 등식이 깨지고 ‘탄탄한 몸매=부의 상징’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미 미용성형그룹’의 백송이 원장은 남성들의 미(美)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백 원장은 “최근 몸매 관리는 물론 남성의 상징이던 털을 제거하는 제모 시술을 받는 이도 늘고 있다”면서 “남성미를 드러낼 수 있는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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