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 영화팬 코드 못 맞췄다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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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중 일부. ‘다빈치 코드’는 흔히 ‘작은 야고보’로 불리는 예수 바로 왼쪽 인물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막달라 마리아라는 가설을 소설의 모티브로 삼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중 일부. ‘다빈치 코드’는 흔히 ‘작은 야고보’로 불리는 예수 바로 왼쪽 인물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막달라 마리아라는 가설을 소설의 모티브로 삼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냥 소설로 남겨 두는 편이 더 나았을 뻔했다.

개봉 전부터 신성 모독 논란을 빚었던 영화 ‘다빈치 코드’가 18일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영화의 완성도는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논란이 무색할 만큼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만듦새는 물론이고 원작 소설이 제기했던 문제 제기(성배의 정체는 막달라 마리아이며 예수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의 도발성마저도 재생산하지 못했다.

▽영화, 소설과 무엇이 다른가=등장인물과 사건 같은 기본 내용은 원작 소설에 충실한 편. 다만 여주인공 소피와 할아버지인 소니에르는 원작과 달리 혈연관계가 아닌 것으로 설정된다. 시온 수도회의 수장인 소니에르가 ‘예수의 후손’인 소피를 보호하기 위해 할아버지가 되어 준다는 것.

또 주인공 랭던은 암호의 속뜻을 풀기 위해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를 뒤지는 대신, 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간단히’ 알아낸다. 이 같은 설정은 이 영화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지적이고 진중한 분위기를 증발시켜 버린다.

결정적 패착은 마지막 장면. 원작 소설은 ‘성배’의 정체를 막달라 마리아로 규정하면서도 마리아의 관이 숨겨진 위치를 독자에게 상상하게 만들어 끝을 절묘하게 열어놓는다. 하지만 영화의 카메라는 땅 밑까지 훑어 내려가 관 표면의 질감까지 잡아낸다. 볼거리를 ‘떠먹여’ 주면서 극적 여운과 상상의 여백을 지워 버리는 할리우드의 상업적 접근법이 부작용을 일으킨 경우.

▽우려인가, 마케팅인가=기독교 단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세계는 영화에 대한 논란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국내에서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결과적으로, 이런 움직임은 영화의 ‘장사’를 도운 셈이 됐다. 이 영화는 관객의 호기심에 힘입어 각종 인터넷 영화 예매사이트에서 90%에 가까운 예매율을 기록 중이다.

개봉 때까지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 ‘비밀 마케팅’을 펼친 것도 “반발을 우려한 것이 아니라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마케팅 수법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가 처음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다빈치 코드’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면서 들끓어 올랐던 관심은 이제 실망과 비난으로 그 낯빛을 바꾸고 있다.

▽영화, 무엇이 문제인가=영화는 기독교계의 우려가 뜬금없게 보일 정도로 원작 소설에 비해 도발성과 발칙함이 떨어진다. 아니, 영화는 애당초 논란을 빚을 의도가 없었던 쪽에 가깝다. 예수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랭던의 캐릭터는 “나도 어린 시절 우물에 빠졌을 때 예수를 찾았다”면서 원작이 갖는 날선 주장에 거듭 ‘물타기’를 시도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원작의 방대한 콘텐츠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영화적 스피드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데서 발생한다. 역사가 티빙 경과 섬뜩한 광신도 사일러스, 랭던을 뒤쫓는 파슈 경찰국장 등 소설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던 캐릭터들은 영화 속에서 존재감 없이 부산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야기가 탄력과 생명력을 갖지 못한 채 길고 복잡한 대사에 의지해 흘러가려다 보니 영화는 결국 스스로 뿌려놓은 방대한 이야기의 씨앗들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채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이다. 암호를 보면 곧바로 당연한 듯 해독해 버리는 랭던의 전지전능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과 함께 암호를 풀어가는 긴장과 스릴을 빼앗아 버린다.

미국 최고의 배우라는 톰 행크스조차 대사를 외는 데 급급한 것처럼 보이는 건 연기력 부족 때문이라기보다 기본적으로 연기라는 걸 보여 줄 공간 자체가 없을 정도로 경황없고 빡빡한 영화의 조급증 탓이다. 극적 재미를 위해 영화 초반에 등장인물 대부분을 종합선물세트처럼 공개해 버리는데, 이 때문에 원작의 스릴과 묘미는 사라져 버렸다.

가볍고 빠르고 손쉽게 가려고 했던 영화 ‘다빈치 코드’, 결국 주장도 진실도 재미도 없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美 로빈슨 교수가 지적하는 오류

영화 '다빈치 코드'가 18일 개봉하고 '유다복음서'가 공개돼 정통 기독교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가운데 신약학(新約學)계의 세계적 석학인 제임스 M 로빈슨 미국 클레어몬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82)가 장로회신학대 초청으로 방한했다. 로빈슨 교수는 17일 본보와 단독 회견을 갖고 '다빈치 코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다빈치 코드'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대목이 여럿이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작가 댄 브라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제자를 여성으로 보고 이를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한다. 기독교가 예수의 결혼을 숨기기 위해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해왔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빈치가 그렇게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다름 아닌 사도 요한이다. 요한은 12명의 제자 중 가장 나이 어린 미소년으로 예수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았던 인물이다. 댄 브라운의 주장처럼 이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였다면 다빈치는 예수가 가장 아끼고 사랑한 제자 요한을 이 그림에서 제외했다는 말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다."

소설 '다빈치 코드'의 근거가 된 '빌립복음서'와 '마리아복음서', 그리고 지난달 공개된 '유다복음서' 등은 모두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에 포함돼 있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서기 180년경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됐다가 3∼4세기에 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로 번역됐다.

콥트어 전문가로 나그함마디 문서 발견 당시부터 이를 연구해온 로빈슨 교수는 "이들 문서는 대부분 인간의 육체를 부정하고 영혼을 중시하는 영지주의 입장에서 기록됐다"면서 "나중에 이단으로 몰리면서 문서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발견돼 유물상들 사이에 거래돼왔다"고 주장했다.

-'다빈치 코드'에서 인용되고 있는 빌립복음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나.

"빌립복음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의 '코이노스'라고 기록하고 있다. 콥트어로 이 단어는 동역자, 일꾼, 사도란 뜻이다. 그런데도 댄 브라운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이를 '짝'이라고 해석해 그녀를 예수의 부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빌립복음서에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입맞춤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에로틱한 성애의 표현이 아니다. 당시 사람들은 친밀한 인사로 입맞춤을 했다. 심지어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도 스승을 체포하라는 신호로 예수에게 입맞춤을 하지 않았는가."

-나그함마디 문서 중의 하나인 유다복음서는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나.

"유다복음서는 '예수를 악한 세상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유다가 그의 도우미로 나섰다'는 영지주의적 내용 때문에 일찍이 이단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고대유물 판매상인 프리다 차코스가 유다복음서를 30만 달러를 주고 이집트로부터 빼내왔다. 이를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에 200만 달러 가까운 돈에 팔았다."

로빈슨 교수는 나그함마디 문서를 연구해보면 그리스도교 초기교회는 예루살렘-안니옥-로마로 이어지는 정통교회만 있었던 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 걸쳐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영지주의 입장 때문에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 초기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기독교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든 자들을 사랑하는 운동에서 시작했다며 "영혼을 중시하고 역사와 현실을 외면하는 영지주의를 이단으로 배격한 초기 기독교의 결정은 옳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다빈치 코드'등이 주장하는 반(反) 기독교적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2000년 교회의 역사 속에서 되풀이 돼온 것으로 기독교인들은 느긋하게 대해야 한다"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실은 이미 성경이 낱낱이 확립해주고 있으며, 2000년 동안 이어져온 정통교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빈슨 교수는 17일 장신대에서 '예수의 신앙'을 주제로 강연한 데 이어 19일 서울 동안교회에서 '기독교 시각에서 본 유다복음'을 강연하고 22일 출국할 예정이다.

윤정국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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