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6년 줄리메컵 첫 도난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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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영국에서 월드컵 최종 결승전이 예정돼 있던 1966년 3월 20일, 런던이 발칵 뒤집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센트럴홀에 전시 중이던 월드컵 트로피 줄 리메(Jules Rimet) 컵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 예배 도중이었고 경비원 두 명이 있었지만 누구도 도난을 목격하지 못했다.

줄 리메 컵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월드컵 첫 대회를 앞두고 대회 창시자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인 줄 리메가 기증한 트로피. 프랑스 조각가 아벨 라플뢰르가 순금과 순은으로 제작했고 승리의 여신 니케가 팔각형의 성찬배를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처음엔 FIFA 컵으로 불렸지만 1946년 줄 리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칭이 바뀌었다.

월드컵의 상징이 도난당했으니 개최국 영국의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컵은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나치의 약탈을 피해 이탈리아 축구협회장이 구두상자에 넣어 침대 밑에 숨겨두면서까지 애지중지 보관해 온 보물이 아니던가.

영국 경찰이 수사력을 총동원했으나 아무 소득 없이 1주일이 흐른 뒤 줄 리메 컵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됐다. 런던 교외에서 산책 중이던 한 젊은이의 애견 피클스가 야산 나무 밑에서 신문지에 돌돌 말린 채 버려진 컵을 찾아낸 것.

그러나 줄 리메 컵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통산 3번째 우승을 달성해 줄 리메 컵을 영구 보관하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1983년 리우데자네이루 축구협회 사무실에서 줄 리메 컵은 두 번째로 사라지고 만다. 영국에서의 도난 사건 때 브라질은 “우리나라에선 도둑조차 축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신성모독”이라고 논평했지만 더 큰 망신을 당하게 된 것이다.

용의자 3명이 검거됐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줄 리메 컵은 용광로에서 녹아 완전 소멸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영국의 BBC방송은 지난해 줄 리메 컵이 20년 넘게 암시장에조차 나오지 않은 것을 ‘세계 10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브라질은 현재 줄 리메 컵의 복제품을 제작해 보관하고 있으며 월드컵 트로피로는 새로 제작된 FIFA 컵이 1974년부터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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