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이 큐피드로…“클릭하면 通해요”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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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 3학년 이해완(25) 씨는 지난해 교양과목을 같이 듣던 한 여학생에게 강의실에서 공개 프러포즈를 했다. 그러나 다짜고짜 “만나주세요”라고 한 것은 아니다. 이 씨는 여학생을 강의실에서 본 뒤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아주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이란 카페에 가입해 여학생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이 씨가 게시판에 여학생의 인상착의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글을 올리자 곧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학과 ○○다’, ‘남자친구는 없다’, ‘터프한 남자를 좋아한다’…. 이 씨는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프러포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무턱대고 대시하는 것보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고 다가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그녀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캠퍼스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보았다면? 30대만 해도 “일단 뒤를 따라간다”는 노하우를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은 ‘따라가기’ 대신 인터넷으로 간다. 각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이란 카페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정보의 제공자는 자신이 찾는 사람의 친구와 선후배. 현재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카페는 120개가 넘는다.

“‘심리학개론’ 맨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생머리 여학생”, “오늘 오후 8시경 중앙도서관 1관 3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갈색 코트를 입고 지나갔던 여학생” 등 상대방의 인상착의나 간단한 정보를 게시하면 그 상대를 잘 아는 누리꾼들은 해당 인물이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 버릇, 좋아하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정보를 담은 댓글을 달아준다. 이런 누리꾼들의 훈수에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 연애를 ‘완성’하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의 연애 트렌드다.

자신을 묘사하는 글을 카페에서 봤다는 대학생 임혁(가명·21·경기대 2년) 씨는 “누군가 내게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하는 것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친구를 찾는 사람의 글에 친구의 강의시간표를 댓글로 남긴 적이 있다는 임정석(26·서강대 3년) 씨는 “공개 구애를 펼치는 사람의 용기를 보고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네이버, 다음 등의 게시판이나 지식 검색 메뉴에서는 ‘이별 극복 방법’, ‘첫 소개팅 성공 전략’, ‘연인에게 고백하는 법’ 등 다양한 연애 지식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 ‘인포 러브’ 시대?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이러한 ‘인포 러브’(인포메이션+러브) 세태를 신기해한다.

회사원 최재훈(33) 씨는 “학교 다닐 때 첫눈에 반했지만 누군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포기한 일이 여러 번 있다”며 “주변에 물어보려 해도 마음을 들킬까 봐 꺼렸는데 그때 이런 사이트가 있었으면 제대로 활용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문화평론가 이동연 씨는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젊은이들이 만들어 낸 풍속도”라며 “인간관계가 감성이 아닌 ‘정보’를 통해 이루어지는 시대상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유미나(26·대학생) 씨는 “고백을 받으면 기분이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내 정보를 상세히 아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중앙대 주은우(사회학) 교수는 “개인 정보 노출로 인해 사이버 테러를 받을 수도 있다”며 “다른 사람의 개인 정보를 경각심 없이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만연한다면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야기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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