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뒤 몸이야기]<22>千人千色지휘자의 몸짓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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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의 열연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무대 위 지휘자들의 표정과 몸짓. 위로부터 로린 마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마리스 얀손스, 제임스 레빈.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연극배우의 열연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무대 위 지휘자들의 표정과 몸짓. 위로부터 로린 마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마리스 얀손스, 제임스 레빈.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내가 사자 가면이라도 쓰고 나올까요?”

얼마 전 서울시향을 이끌고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공연한 지휘자 정명훈 씨가 교향악단과의 연습 시간에 답답한 표정으로 던진 말이다. “사자가 ‘어흥’ 하듯이, 그런 소리를 내달라”고 주문했지만, 좀처럼 원하는 화음이 나오지 않자 ‘사자 가면’까지 언급한 것이다.

지휘자는 단 한 음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지만, 자신의 온 몸을 ‘연주’해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지휘자의 표정과 몸짓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이끌어낼 때 매우 중요하다.

지휘의 기본은 양손. 지휘봉을 든 오른손은 박자를, 왼손은 감정을 표현한다. 정해진 지휘 몸짓은 없지만, 어느 나라 연주자라도 알아듣는 보편적인 제스처로 ‘대화를 나눈다’.

가령 ‘포르테(세게)’는 왼손바닥을 펴 위쪽을 향하게 하고, ‘피아노(약하게)’는 반대로 왼손바닥을 아래로 향하는 식. 때로는 야구감독과 선수들이 그러하듯 지휘자와 단원이 특정 ‘사인’을 미리 정해놓기도 한다. 서울시향에서는 정 씨가 왼손가락으로 허공에서 뭔가를 움켜잡는 듯한 동작을 하면 이는 “템포를 잡으라”는 뜻으로 통한다.

지휘봉은 지휘자의 상징이지만, 많은 지휘자들이 2악장에서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지휘한다. 경기도립오케스트라의 유광 예술감독은 “보통 2악장은 느리고 감정을 섬세히 표현해야 하는 곡들인 만큼 막대의 뾰족한 끝보다 손가락으로 더 풍부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휘자마다 몸의 ‘연주법’도 천차만별이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교통순경 같다”는 평을 들었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명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극적인 대목에선 아예 깡충깡충 뛰곤 했다.

지휘봉은 물론 머리까지 마구 흔들어대는 ‘열정적인’ 지휘는 청중에게는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정작 연주자들은 ‘쇼맨십’이라며 꺼린다. “필요 이상으로 지휘봉을 흔들면 어느 지점에서 소리를 내야 할지 헷갈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중에는 화려한 ‘할리우드 액션’을 자랑한 지휘자도 적지 않다. 쇼맨십이 뛰어났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자신의 머리와 손에 별도로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비추도록 주문해 ‘오케스트라가 아닌 청중을 지휘한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지휘자들의 익살’의 저자인 원로 음악 칼럼니스트 신동헌 씨가 들려주는 유머 한 토막.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지휘봉을 지그재그로 마구 휘둘러대는 지휘법으로 악명 높았다. 오죽하면 ‘지휘봉이 32회 좌우로 떨면서 내려와 조끼의 세 번째 단추에 왔을 때 연주를 시작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누군가 ‘저런 애매한 지휘봉에 맞춰 대체 언제 연주를 시작하느냐”고 묻자 빈 필의 팀파니 주자였던 한스 게르트너는 이렇게 대꾸했다. ‘우리는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느낄 때 시작합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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