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시어지, 눈치 10단…서비스는 100단

  • 입력 2006년 2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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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컨티넨탈호텔 박인선(왼쪽), 남정희 컨시어지. 사진 제공 인터컨티넨탈호텔
인터컨티넨탈호텔 박인선(왼쪽), 남정희 컨시어지. 사진 제공 인터컨티넨탈호텔
《갑자기 신분이 상승한 ‘거리의 여자’ 비비언(줄리아 로버츠)이 고급 옷가게에 들어갔다가 심한 모욕을 받고 쫓겨 나온다. 호텔로 돌아온 비비언은 로비에 있던 컨시어지(Concierge)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컨시어지는 평소 알고 지내는 고급 옷가게 매니저에세 비비언을 데려가 품위 있고 세련된 숙녀로 변신시킨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한 장면이다. 컨시어지는 호텔 로비에 상주하면서 고객의 온갖 요구를 챙기는 ‘집사’같은 사람이다.》

중세시대 성에 딸린 각 방의 초를 관리하는 집사를 뜻하는 프랑스어 ‘르콩트 데 시에르지(le comte des cierges)’에서 유래했다. 컨시어지가 하는 일은 관광 가이드에서 비즈니스맨의 영업사원 노릇까지 거의 무한대. 이들은 짓궂은 고객 앞에서 웃어야 하는 등 ‘포커페이스’이자 척하면 알아들어야 하는 ‘눈치 고수’들이다.

○ 컨시어지는 아무나 하나

“외국어는 기본이고, 명품 매장 매니저들과 인맥도 쌓아야 합니다. 청계천을 답사하면서 ‘청계천 구경, 동대문 상가 쇼핑, 방산시장 칼국수 막걸리’ 관광코스도 개발했어요.”

컨시어지 경력 19년차인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호텔 박인선 과장의 유니폼에는 컨시어지 베테랑의 상징인 ‘골든 키’ 장식이 반짝인다.

골든 키는 세계컨시어지협회가 경력과 고객의 감사 편지 등을 심사한 뒤 주는 상징물. 한국에는 골든 키를 보유한 컨시어지가 10명뿐이다.

고객이 ‘사우나에 가고 싶다’고 한마디 하면, 고급 스파, 찜질방, 일반 목욕탕 중에서 뭘 말하는 건지 금세 알아차리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센스는 모두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외국 호텔의 컨시어지들이 대부분 50, 60대 ‘노신사’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고객의 ‘해결사’

컨시어지의 업무 영역은 확실하지 않다. 법과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고객의 ‘해결사’인 셈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여권과 지갑을 호텔에 두고 체크아웃을 했다면? ‘알아서 찾으러오겠지’ 하면 컨시어지가 아니다.

박 과장은 “공항으로 출발한 버스와 택시를 수소문해 손님이 탄 버스 운전사와 어렵게 통화할 수 있었다”면서 “여권을 전달하는 과정이 ‘007작전’ 같았다”며 웃었다.

국내 거래처를 늘리고 싶은 외국인 사업가를 위해 수십 곳의 관련 업체 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하고, 자녀의 이력서 작성을 도와 달라는 요청도 들어준다.

이런 서비스를 받은 고객이 단골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객의 아들까지도 ‘아버지가 한국에 가면 ○○ 컨시어지를 찾으라’고 했다면서 직접 찾아와 평생 고객이 된다고 한다.

요즘은 백화점 은행 등에서도 고객 감동을 위해 호텔 컨시어지들을 스카우트하는 추세다.

지난해 8월 리츠칼튼호텔에서 현대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긴 유재희(33) 씨는 10년의 컨시어지 경력을 갖고 있다. 유 씨는 “허름한 행색의 중국인 모녀가 ‘한국 여자처럼 예뻐지고 싶다’고 하기에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쇼핑을 돕고 미용실까지 추천해 줬다”고 귀띔했다.

고객 시중 들기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컨시어지들은 “까다로운 고객은 업무 영역을 넓혀 주는 고마운 분”이라고 답한다.

유재희 컨시어지 사진 제공 현대백화점

▼컨시어지 ‘골든 키’ 받으려면

△얼마나 일했나

최소한 호텔 컨시어지 생활이 10년을 넘어야 그 경력과 노하우를 인정받는다.

△고객을 감동시켰나

고객의 감사 편지나 메시지 등을 증거 자료로 내놓아야 한다.

△각종 추천서

소속 호텔의 총지배인, 세계컨시어지협회 정회원들이 쓴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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