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우리시대 ‘장생과 공길’은 없는가

  • 입력 2006년 1월 18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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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그들은 당대 최고의 시사 풍자 코미디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오는 장생과 공길, 두 광대 말이다. 두 사람은 타고난 재주와 코미디 감각을 바탕으로 최고 권력자인 연산과 그의 애첩 녹수를 풍자하는 질펀한 놀이판을 벌여 서민들에게 웃음을 안겨 준다. 별다른 마케팅의 도움 없이도 그들은 단지 공연(?)에 대한 입소문 덕분에 장안의 명물이 된다. 결국은 임금을 희롱한 죄로 대궐에 끌려가지만 왕을 웃기고 말겠다는 장생의 목숨을 건 호언장담이 현실화되면서 연산은 궁 안에 광대들의 거처까지 마련해 준다. 조선시대 최초의 왕실 전속 코미디극단의 탄생인 셈이다.

비록 역사책에 나온 한 줄의 이야기에 뼈와 살을 붙인 영화라지만 어쨌거나 ‘왕의 남자’를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코미디의 힘’ ‘웃음의 힘’에 생각이 미쳤다. 예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시류 풍자와 해학의 기본은 권력자들의 양면성을 가차 없이 꼬집는 데서 출발하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TV의 코미디나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웃음이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리둥절해진다. 웃음의 세대 격차라고 해야 하나. 도대체 왜 방송사들은 영화배우와 코미디언, 가수 등 다 큰 어른들에게 교복을 입혀 ‘대통령에겐 명함이 있을까, 없을까’ 같은 퀴즈를 놓고 머리를 쥐어짜게 하거나, ‘묵찌빠’와 흡사한 게임을 하면서 스타들이 뿅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는 가학적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겨 준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단순한 말장난에 동작을 갖다 붙인 코미디들이 판을 치고, 만약 히트 영화 패러디가 없었더라면 개그 프로그램은 죄다 쓰러질 지경이다. 이런 프로를 볼 때면 우리 사회에서 정말 웃어야 할 중장년 세대가 웃음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한 코미디언의 말이 실감 난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고, 제대로 웃게 해 주는 멋진 코미디를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치 있는 언어유희와 날선 해학이 살아 있는 시사 풍자 코미디가 살아나야 한다. 현대사의 아픔인 ‘분단’이 한국 문학과 영화의 큰 광맥이 되었듯이, 최고 권력자와 힘센 정치인들의 실언이나 잘못은 시사 코미디의 보물 창고가 될 것이다. 반가운 일은 아니나, 사실 이 점에 있어선 한국만큼 소재가 무궁무진한 경우도 보기 드물 것이다. 오죽하면, 한 전직 여성 장관이 코미디가 아닌 실제 정치무대에서 “코미디야, 코미디”란 명쾌한 진단을 내렸을까.

이렇게 노다지 광맥을 두고도, 장생과 공길의 광대극처럼 국민에게 사랑받는 본격적인 시사 코미디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말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다면서도, 시청률이라면 뭐든 서슴지 않을 방송사들이 유독 코미디에만은 엄격한 자기 검열을 적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낙관주의자는 웃어서 잊어버리고 비관주의자는 웃음을 잃는다고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풍자와 해학으로 질타하는 장생과 공길은 존재할 수 없는가. 1970, 80년대 독재정권에서 온몸으로 저항했던 한 시인은 “풍자냐 자살이냐”라는 말로 억압된 국민정신의 마지막 활로를 규정했다.

올 한 해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리란 것이 헛된 기대라면, 부디 코미디의 힘을 빌려서라도 우리 모두가 낙관주의자가 되기를 바란다. 웃으면 복이 온다.

고미석 문화부 차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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