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모-함석헌 생명사상 재조명…한국프레스센터서 세미나

입력 2005-11-28 04:23수정 2009-09-3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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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사상을 한국의 전통사상에 접목해 새로운 사상체계를 구축했던 다석 유영모(1890∼1981)와 씨ㅱ 함석헌(1901∼1989)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린다. 오산 창립 100주년기념사업회는 2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유영모 선생과 함석헌 선생의 생명사상 재조명’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개최한다.

오산학교는 남강 이승훈이 1907년 12월 사재를 털어 평북 정주군에 설립한 민족학교로 다석과 함석헌은 이 학교에서 교장과 학생으로 만나 평생 사제의 연을 맺었다. 다석은 YMCA 한국인 초대 총무였던 김정식의 인도로 기독교에 귀의한 뒤 교육운동에 투신하는 한편 씨ㅱ(영원한 생명)사상을 구축했다. 함석헌은 1921년 20세에 오산학교 3학년에 편입해 만난 다석과 1924년 일본 유학생활 때 만난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를 평생의 스승으로 섬겼다.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는 ‘내가 만난 유영모와 함석헌’이라는 발표문에서 1939년부터 1일 1식을 실천하고 부인과 성생활을 중단하는 해혼(解婚)선언을 한 뒤 공부와 사색에 몰두한 다석의 기인적 삶과 그를 통해 생명사상에 눈을 뜬 함석헌의 인연을 자세히 소개한다.

김 교수는 다석이 오산학교에서 같이 교단에 섰던 춘원 이광수에 대해선 “그 사람 글 쓰는 재주가 좀 있는 사람”이라고 딱 한마디로 평가했지만, 인촌 김성수에 대해서는 2시간이 넘게 칭송했던 일을 회상하며 자신은 비록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인촌에 대한 존경의 염을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박재순 씨ㅱ사상연구회 회장은 3·1운동과 광복, 분단과 6·25전쟁, 4·19혁명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격변 속에서 함석헌이 어떻게 다석의 생명사상을 실천적 사상으로 변모시켰는지를 발표한다.

박 회장은 “함석헌은 대한제국 말 문명개화론자에게 영향을 끼친 사회진화론적 힘 숭배 사상과 달리 고난과 약함을 배려하는 생명살림과 사랑의 전체주의를 지향했다”고 밝혔다.

한국외국어대 이기상(철학) 교수는 ‘다석 유영모의 생명사상의 영성적 차원’이라는 발표문에서 다석이 사용한 독특한 우리말 어휘 개념을 풀어내면서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 하이데거의 사상과 비교해 그 영성의 현대적 의미를 파헤쳤다.

이 교수는 “다석은 마치 자신의 삶 전체를 생명이라는 놀음판에 판돈을 걸고 죽기 살기의 모험을 벌이듯 치열하게 살다 갔다”며 “그의 삶이 곧 그의 생명사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인류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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