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晩秋의 서정’…가족-연인과 거니는 서울근교 낙엽길

  • 입력 2005년 11월 1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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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떠나가는 가을의 마지막 유혹이자 선물이다. 낙엽이 쌓인 서울 남산의 소월길. 변영욱 기자
낙엽은 떠나가는 가을의 마지막 유혹이자 선물이다. 낙엽이 쌓인 서울 남산의 소월길. 변영욱 기자
‘가까이 오라/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리라/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바람이 몸에 스며든다/시몬!/너는 좋으냐/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이다. 발표된 지 100년이 넘지만 낙엽을 밟을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되살아난다.

입동(7일)이 지난 요즘 도시의 길은 자연의 마법에 빠져 있다. 나무는 단풍에, 길은 낙엽에 취해 있다. 청계산에서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남숙(41) 씨의 도움을 받아 수도권의 낙엽 명소를 소개한다.

더 늦기 전에 낙엽을 만나자. 그리고 나지막하게 그 누군가를 불러 보자.

○ 도심 속 낙엽 길

△양재 시민의 숲

서울 강남의 ‘낙엽 명소’다. 단풍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 25만여 그루가 단풍과 낙엽의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발산한다. 연인들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산책 코스는 경부고속도로 옆과 여의천을 끼고 도는 외곽 오솔길이 좋다. 내친 걸음에 시민의 숲에서 단풍이 한창인 청계산을 오르는 코스도 권할 만하다.

△올림픽 공원 위례성 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 특히 좋다. 자동차들이 뜸해지면 노란색 은행잎과 울긋불긋한 단풍잎이 가로등 빛을 받아 색의 향연을 펼친다. 800여 m의 길이 곧게 뻗어 있기 때문에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경복궁-청와대-삼청동 길

역사와 낙엽이 만나는 코스다. 경복궁 서쪽 담장에서 청와대와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고궁의 운치를 느끼면서 가을을 재촉하는 낙엽을 만날 수 있다. 동십자각을 기점으로 경복궁 동쪽 담장 따라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약 1km는 갤러리와 찻집이 있어 문화적 향기가 가득하다.

△화랑로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입구∼삼육대에 이르는 8.6km. 올해 서울시가 선정한 ‘단풍과 낙엽의 거리’ 중 가장 긴 곳이다. 아름드리 버즘나무(플라타너스) 1200여 그루가 만드는 ‘나무 터널’이 하이라이트다. 비교적 사람들이 적어 여유 있게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남산 소월로

서울 도심 복판에 있는 산책로로 유명하다. 서울예술대학 부근에서 시작되는 은행나무 길은 남산도서관을 거쳐 4km가 넘게 이어진다. 산책이나 드라이브는 물론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서울을 한눈에 바라보는 것도 매력적이다.

△덕수궁 돌담길

퇴근길 데이트 코스로 훌륭하다. 과거 ‘연인끼리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옛말이 된 지 오래인 듯하다. 야간 조명으로 운치가 더해진 이곳을 산책하는 연인이 많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정동 입구까지 근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약 900m가 이어진다.

△영등포구 여의서로(서강대로∼국회 뒤∼파천교)

봄에는 벚꽃으로 유명하지만 가을에는 화사한 단풍을 만날 수 있다. 이곳 벚나무들은 일조량 차이 때문에 한쪽은 갈색, 다른 쪽은 붉은색이 강하다. 서강대로에서 시작해 국회의사당 뒤편을 거쳐 파천교로 이어지는 약 1.8km 순환도로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 놀이공원에서 낙엽 즐기기

△서울대공원-서울랜드(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외곽순환도로 6.5km는 왕벚나무 은행나무 등 2600그루가 우거져 있다. 공원으로 들어서면 ‘낙엽의 거리’로 지정된 얼룩말 방사장∼유인원관 500m 구간과 ‘단풍의 거리’로 지정된 맹수사∼산새장 450m 구간에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 100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코끼리 방사장 앞에는 20평 규모의 ‘단풍풀장’이 있어 마음껏 뒹굴거나 뛰어놀 수 있다. 서울랜드 부근은 4km에 이르는 외곽 순환 길, 호수 주변 4km, 미술관 진입로 2km가 대표적인 단풍-낙엽 코스로 꼽힌다.

△에버랜드(경기 용인시)

마성 톨게이트에서 에버랜드 서문과 캐리비안베이를 지나 정문까지 이르는 5km 구간에는 단풍나무와 벚나무 은행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 현란한 풍광을 연출한다. 에버랜드 서문에서 호암미술관에 이르는 호수의 거리에는 가을 색이 호수에 비쳐 색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한국 민속촌(경기 용인시)

고향마을의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전통가옥 사이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도심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나무 수십 종이 숲을 이룬다.

○ 낙엽 드라이브

△경기 양평 두물머리∼양수리 카페촌∼청평댐

두물머리에서 청평댐에 이르는 코스는 단풍과 낙엽, 한강이 어우러진다. 코스 중간에 있는 남양주종합촬영소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공동경비구역 JSA’ 등 각종 영화의 흔적과 함께 낙엽을 볼 수 있다.

△국립수목원(경기 포천시)

광릉수목원에서 이름을 바꾼 국립수목원은 수도권에서 가까워 부담이 적다. 승용차로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이어지는 43번 국도를 따라가다 축석 검문소에서 우회전해 314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수목원 주변 도로는 거목과 낙엽이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낙엽이 아름다운 이유

예쁘거나 그렇지 않거나, 크거나 작거나, 곱거나 그렇지 않거나 10월의 낙엽보다 감동적인 11월의 낙엽을 바라봅니다.

낙엽이란 떨어진 잎을 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떨어지는 잎이 없지 않건만 유독 가을의 낙엽에 관심이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빛을 이용하여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나무의 생존을 책임졌던,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던 잎이 추락하는 장면이 극적이기 때문입니다.

낙엽이 지는 이유는 겨울에는 나무의 뿌리가 수분을 흡수하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지요. 잎을 통한 증산작용으로 수분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랍니다. 또 잎이 해야 할 역할이 끝났기 때문이지요. 가야 할 때가 됐기 때문에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마찬가지입니다.

잎은 지혜롭습니다. 그는 떨어지기 전 잎자루에 ‘떨켜’라는 것을 만듭니다. 잎이 떨어진 자리에 병균이 침입하지 못하고, 나무의 수분이나 양분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보호막(코르크층)을 만드는 것이지요.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제 할 일을 한 뒤 다른 것에 폐를 끼치지 않는, 기꺼이 떨어지는 추락에 있습니다.

김남숙 숲 해설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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