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유부녀-이십대 청년 커플의 사랑… ‘도쿄 타워’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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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그는 “소녀 적에는 거짓말쟁이였다. 여동생이 연예인 사인을 받아달라고 조르면 내가 몰래 사인하고선 진짜처럼 내밀곤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에쿠니 가오리. 그는 “소녀 적에는 거짓말쟁이였다. 여동생이 연예인 사인을 받아달라고 조르면 내가 몰래 사인하고선 진짜처럼 내밀곤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도쿄 타워/에쿠니 가오리 지음·신유희 옮김/343쪽·9000원·소담

올해 마흔한 살이 되는 일본 여성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남성 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커플로 쓴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와 더불어 국내에서 널리 읽히는 일본 작가로 꼽힌다. 그녀의 사진 가운데는 청초하고 투명해 보여 이십대처럼 보이는 게 있는가 하면, 긴장을 풀고 활짝 웃는 얼굴이 구김살 없는 중년 부인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도쿄 타워’는 마흔 살을 전후한 여자 둘과 갓 스물이 넘은 풋풋한 청년들 사이의 불륜을 다뤘다. 대중소설과 통속소설의 사이 어디쯤에 위상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국내에도 들어올 예정이다.

토오루는, 이혼한 뒤 잡지 편집장 일에 매달리고 있는 기분파 어머니와 함께 우아한 맨션에 살고 있다. 그는 마흔 살쯤 된 기호품 가게 주인인 시후미와 사랑을 나눈다. 토오루의 친구인 코우지는 아르바이트가 끝날 때마다 서른다섯 살의 매력적인 주부 키미코를 만난다.

네 사람이 만드는 두 가지의 사랑은 분명히 불륜이긴 하지만 서로 색깔이 다르다. 토오루가 시후미의 조용한 침실로 들어가 본 것은 묘하게도 관음(觀音)상이다. 시후미는 토오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시후미와 토오루는 책과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토오루는 시후미가 읽고 들은 책과 음악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것들에 더욱 호기심이 커진다. “시후미가 주는 불행이라면 다른 행복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친구다. 그러나 시후미는 산뜻한 인간이면서도 그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 듯하다. 여러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토오루를 보고는 ‘냉담할 정도로 간단명료한 미소’만 한번 지을 뿐이다.

반면 코우지는 냉소적이고 오만한 바람둥이다. 키미코와는 육체적인 관계가 거의 전부지만 키미코가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코우지에게 키미코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돈을 건네줬다가 “지금 원조교제하는 거냐”는 반발을 사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에쿠니 가오리는 어두침침하고 끈적끈적한 이야기를 특유의 단순한 문장으로 말갛게 녹여내고 있다. 베드신을 그려낼 때는 의외로 과감해서 청초한 그녀의 사진만 봐온 독자들은 “이런 면도 있었구나”하고 생각할 만하다. 통속적인 소재를 느끼하지 않게 써내는 게 그녀의 스타일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토오루의 커피 취향을 이야기하면서 이들의 사랑이 사실 어떤 성격인지 슬쩍 보여준다. ‘토오루는 인스턴트 커피를 좋아한다. 걸러먹는 커피보다 취향에 맞는 것 같다. 옅은 향기가 기분 좋다. 타는 것도 간단하고. 간단하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런 사랑에 몰입하는 이들의 감성과 반응을 산뜻하게 그려낸 책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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