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4>나의 인생 나의 학문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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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머리와 함께 마음으로 읽혀야 제 맛이다. 마음 따뜻한 글은 소재에 대한 사랑의 결실인데, 우리 고고학계와 미술사학계의 큰 별이던 삼불 김원용(三佛 金元龍·1922∼1993)이야말로 깊은 식견의 글에 넉넉한 정감의 향기도 담았던 필자다. 생전에 그의 수필에 대한 독자층의 호응이 많았던 것도 정감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수필은 ‘마음 가는 대로’ 적는 글이다. 개인적인 안목과 정조(情調)가 주조(主調)가 된다는 말이다. 아쉽게도 개인적인 글은 자칫 신변 넋두리로 흐를 염려가 있다. 신변 잡담에도 삶의 진실과 향기가 담기면 세상의 공감을 얻지만 그렇지 못하면 세상의 소모만 된다.

삼불 수필의 으뜸 미덕은 솔직 담백함이다. 사람의 심상은 아래로는 동물을 닮고, 위로는 신의 경지를 흉내 내곤 한다. 이 연장으로 글을 적다 보면 신을 선망한 끝인지 공연히 잘난 체하기 쉬운데, 삼불은 동물적 야성도 숨기지 않는다.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우여곡절 끝에 아내로 맞던 날, 그 절정감을 이기지 못해 ‘함께 죽자’ 했다 한다.

부끄러움을 털어놓던 삼불의 그 곡진(曲盡)한 마음에 어느새, 바위 홈에 샘물 스미듯이, 세상을 감싸는 여유가 고였다. 그런 여유로 글을 썼기에 해학이 넘쳐나 읽기에 감칠맛 나고, 주장하는 바에 호소력이 넘친다.

이를테면 수필 한 꼭지는 길에서 파는 강아지 귀가 쫑긋한 것이 신기해서 ‘그게 풀칠한 것 아니요?’ 했던 농말부터 시작한다. 피란 시절 부산 사람들이 개를 ‘독구’라 부르던 것이 기억에 남아 그때 키운 놈에게 주인 성을 따라 ‘김덕구(金德九)’라고 문패까지 붙여 주었는데, ‘그것은 개새끼라 자기 문표를 자기가 씹어 버리고 말았다’고 탓한다. 경지에 갔던 문인화 한 점에 말을 거꾸로 타고 황야를 가는 사람을 그려 놓고는 화제(畵題)로 ‘인생은 어차피 음주운전 아니겠소?’라 적었다.

‘한국고고학연구’ ‘한국미의 탐구’ 같은 전문서적을 냈던 삼불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사계의 책자에 발문을 즐겨 적었다. 그의 발문은 전문 식견의 산문(散文) 수준을 훌쩍 넘어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점철된 서사시(敍事詩)가 되어 있었다.

백자대호를 찬미하는 글은 이런 시문(詩文)이다. ‘조선백자는 허식이 없고/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보고 있으면 백운(白雲)이 날고/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라 묘사하고는, ‘그 아름다움을 필설로 다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조선백자의 미는/이론을 초월한 아름다움/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경주의 고속도로 입구 남쪽에 있는 남산. 그곳 불적(佛蹟)을 담은 도록에 삼불이 적은 해설은 이렇게 끝맺는다.

‘신라인들이 오르던 길을 오르고 있으면 솔나무 옆의 두루뭉술한 바위가 갑자기 부처가 되고 흐르던 시간이 소리 없이 멎어서 신라로 돌아간다. 천 년, 부처는 그렇게 앉아 계시고, 천 년, 그렇게 서 계실 것이다. 부처는 바위, 바위는 부처, 우러러보는 사람도 부처, 모두 피가 통하는 일심일체이다.’

그렇게 삼불은 우리 문화유산을 잘 알았기에 좋아했고, 좋아했기에 더 깊어진 학문이었다. 이 책은 ‘하루와 하루와의 만남’ 등 생전에 낸 수필집에서 사후에 가려 뽑은 것이다.

김형국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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