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흰둥이’가 깨우쳐 준 구도의 길

  • 입력 2005년 10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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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우연히 개 한 마리가 수도원 식구에 합류했다. 수도원을 방문했던 어느 분이 슬며시 버리고 간 개를 한 수사님이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개를 보는 순간 짜증부터 났다. 눈치 없이 짖어대며 평화로운 수도원 분위기를 깰 때처럼 난감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나의 심중을 알아 챈 수사님이 수도원 본채에서 떨어진 곳에 개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고 ‘흰둥이’라 이름 지어 주었다. 흰둥이는 작고 볼품없었지만 유난히 사람을 따랐다. 마침 수사님을 졸졸 따라오는 흰둥이를 보면서 그 수사님에게 말했다.

“수사님, 수도생활은 저렇게 해야 합니다. 자나 깨나 주님만을 따라다니는, 온전히 진리에 순종하는 구도자(求道者)의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서 충견(忠犬)이란 말이 생겼나 봅니다.”

‘하느님의 충견인 수도자’란 말을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지난밤, 약 30분 동안 산책할 때 끝까지 따라 온 흰둥이에 나의 마음도 완전히 바뀌었으니 그 충실성에 감동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짖으며 대드는 흰둥이에게 깜짝 놀라서 소리치며 발로 찰까 하다가 멈추었다. 다음 날 아침 수사님들에게 지난밤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어느 수사님이 즉시 반색했다.

“짖으며 대드는 것은 수사님을 좋아해 장난하고 싶어 하는 애정의 표현이죠.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만일 흰둥이를 발로 찼다면 말 못하는 흰둥이일망정 얼마나 황당해 했겠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음을 깊이 깨달았다.

오늘 아침 이슬에 젖은 흰둥이의 모습이 참 꾀죄죄하고 초라해 보인다. 그래도 수사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수사님들을 부지런히 잘 따르기에 볼품없는 모습도 예뻐 보이는 것이다.

한결같은 그 모습이 가난하고 겸손한 구도자의 모범 같다.

이수철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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