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한 인생을 바꾼 어머니의 기도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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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골 고향 집. 마치 자택연금이라도 당한 듯이 붙박이로 갇혀 지냈던 그 시골 방은 남쪽을 향해 창이 하나 나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창을 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큰 산이 그 아래의 조그마한 나의 고향마을을 수호신인 양 굽어보고 있었다. 28세라는 한창 나이의 내가 시시각각 목구멍을 타고 밀려 나오는 각혈의 선지피 덩어리에도 불구하고 죽을힘을 다해 되뇌었던 말씀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편 121장 1절)였다. 이 말씀은 당시 내가 계속 되뇌었던 구절이었다. 그것은 웅대한 저 산이 내게 도움을 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시간강사 생활 1년 만에 심한 각혈로 쓰러져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 온 나는 기약도 없이 매일같이 피로 얼룩진 창을 열고 그 산을 향해 목멘 소리의 기도만 되풀이했다. 그때마다 들려오는 소리란 조금 더 큰 땅울림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죽음의 발자국 소리’일 뿐이었다.

얼마나 되었을까? 시간 따라, 달 따라, 허공만 맴돌며 좌절 속으로 사그라지곤 하던 나의 기도는 갑자기 한 가냘픈 여인의 기도 소리에 막혀 전혀 다른 소리로 바뀌었다. 그 소리는 놀랍게도 초등학교 문전에도 가보지 못해 동생들 어깨 너머로 겨우 익힌 한글 실력으로 성서를 백독했다는 어머님께서 옆방에서 “너(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시편 121장 2절)”라는 말로 화답해 주신 그 기도였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촌로 권사의 기도였지만 그 가냘픈 음성은 강한 파열음이 되어 나의 심혼을 사로잡았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병석에서 일어나 산책도 하고, 교회도 나가고, 책도 보고, 고향 교회에서 설교도 했다. 그러한 와중에 전혀 예기치 않게 모교로부터 대학 전임교원으로 일하라는 연락을 받고 상경 길에 올랐던 것이다. 아, 어머님의 기도 위력! 꿈인가 생시인가. 나의 입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들고 돌아올 것이다”(시편 126장 6절)라는 노래가 절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이곤 한신대 신학과 교수·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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