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터지는 여자들 2005 한국의 중년]<5·끝>따로 또같이 가자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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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은 가족 안에서 속을 태우고 끓인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고 자식이다. 자신에게,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한 시민단체가 정한 ‘부부의 날’에 2인3각 경기를 하며 환하게 웃는 부부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중년 여성은 가족 안에서 속을 태우고 끓인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고 자식이다. 자신에게,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한 시민단체가 정한 ‘부부의 날’에 2인3각 경기를 하며 환하게 웃는 부부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내 얘기 같아 많이 울었어요.” “주부의 애환을 대변해 줘서 속이 다 시원했어요.”

첫 회부터 동아닷컴, 네이트,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마다 조회수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등 2005 중년 여성 시리즈는 누리꾼(네티즌)들에게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본보 특별취재팀에는 ‘중년 주부의 현주소를 잘 보여줬다’는 의견이 쇄도했다. 한 누리꾼은 “남편이 ‘봐라. 다른 여자들도 다 당신처럼 사는데 왜 당신만 불만이 그렇게 많냐’고 하더라”면서 “중년 아내의 아픔을 외면하는 남편을 또 한 번 실감했다”고 말했다.

반면 “추석을 앞두고 남녀 갈등을 부추긴 감이 있다”거나 “너무 여성 편을 든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다.

신모(48·여) 씨는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이 들 때도 많았다. 이 세상에서 주부나 어머니보다 더 힘든 자리는 없을 거다”라고 말했다. 신 씨는 “그러나 동시에 이만큼 보람 있는 자리도 없다. 모든 엄마, 아내, 주부 여러분. 힘을 내라”고 격려했다.

ID가 ‘야생화’인 한 주부는 “기사를 읽으면서 밤을 쪄 놓았더니 ‘나더러 까먹으라는 거냐’며 짜증을 내던 남편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고 있지만 언젠가는 복수를 벼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리즈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애환을 호소하는 e메일도 쇄도했다.

한 중년 주부는 “이미 학교에 들어간 딸이 두 명이다. 그런데도 시댁에서는 ‘이제 아이는 그만 낳을 거냐’며 아들을 은근히 강요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정말 싫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을 일찍 결혼시켰다는 50대 중반의 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명절 당일 아침에 얼굴만 삐쭉 내민다”며 “며느리 눈치 보는 시어머니의 답답한 심정도 다뤄 달라”고 호소했다. 한 주부는 “주부도 예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옷 살 돈으로 남편 반찬을, 아이들 학원비를 댄다. 그런데도 뚱뚱하다고 가족이 무시하면 그것처럼 서러울 때가 없다”고 말했다.

대안을 요구하는 의견도 있었다. ID가 ‘revolution’인 독자는 e메일에서 “주부의 불만을 전해 주는 것도 좋지만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새로운 가족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주부 박혜균 씨는 “모든 주부가 시리즈의 내용처럼 살고 있지는 않다. 긍정적인 사례도 지면에 반영해 달라”며 A4용지 3장 분량의 e메일을 보내 왔다.

“우리 시댁은 명절에 며느리를 쉬게 하고 아들에게 제사 음식을 만들도록 해요. 휴가 때도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지내고 사돈 간에 음식도 나눠 먹죠.”

박 씨는 남편, 아이와 행복하게 사는 법도 자세하게 적었다. “시리즈 3회에 ‘딸아이가 현관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출근한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럴 때 우리는 반드시 체벌을 합니다.” 사랑으로 위장된 보호가 아이들을 망치고 엄마, 아빠를 힘들게 만든다는 것.

박 씨는 부부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을 권했다. “아이들 앞에서도 우린 애정을 표현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둘이서만 차를 마시거나 영화도 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가정의 모델을 배우지 않을까요?”

지면 사정으로 모든 독자의 소감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박 씨의 사례는 충분히 대안이 될 법하다. 요컨대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할 일은 다하면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때, 다시 말해 ‘따로 또 같이’ 갈 때 갈등 없는 행복한 중년이 보장되지 않을까.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아내는 ‘한국의 중년여성’ 시리즈를 보고 여기에 우리 집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했다. 나는 늘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매일 집에서 점심과 저녁을 챙겨먹는다. 거기에 대한민국 유교가정의 표본과도 같은 강릉 본가의 가부장적 분위기 역시 그렇다.

그래서 열 받느냐고 물으니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래도 우리는 다투지도 않고 큰소리도 안 내잖아, 하니까 그것은 자기가 다 인격수양이 잘되어서라고 한다.

아내 마음 몰라주는 남편 얘기에 내가 해당되는 사항도 많다. 우리 집 두 아들 역시 틈만 나면 몸종처럼 제 엄마를 찾는다. 나도 그러면서 자식이 그러는 건 못 봐준다.

아내와 나는 일찍부터 저놈들은 ‘우리 인생의 적’이란 생각을 갖기로 했다. 잘 크고 바로 크도록 돕긴 하지만 거기에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걸린 것처럼 애걸복걸 안달복달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 꼭 아내를 위한 것만은 아니지만 나와 아이들은 일주일쯤은 밥을 해먹을 수가 있고, 해먹는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가 먹는 것은 자기가 해결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의 가장 기본적인 일로 서로를 구속하고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또 부엌살림을 알면 아이도 어른도 서로의 일과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근본적으로 우리 집안이 돌아가는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다고 아내가, 또 엄마가 식구로부터 다 위로받는 것은 아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아내 역시 나이 들어가며 어쩔 수 없이 달라져 가는 외모와 몸매에 대해 적잖이 신경 쓰고 있을 것이다. 새로 시작한 공부도 이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모른 척할 것은 모른 척하고, 격려하고 지원할 것은 격려하고 지원한다.

시댁 얘기는 신문에 나온 사례 정도는 오히려 약과다. 우리 집은 명절과 제사 때면 아예 사극을 찍는다. 몇 년 전 어느 명절엔 아직도 이렇게 사는 집이 있는가 싶은지 어느 방송국에서 따라붙은 적도 있다.

20여 명의 대가족과 오가는 손님들까지, 하루에 상만도 일고여덟 번 차려야 하고, 매일 씻어내는 그릇 수만도 수백 벌이 된다. 결혼 후 20여 년간 한 해도 빠진 적 없다. 엄청난 중노동이다. 명절 다음 며칠 앓기도 한다.

아내도 “솔직히 일은 무섭다. 거기에 일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면 웃는 얼굴로 내려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 귀하게 여기는 어머니도 고맙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격려하는 형님과 동서도 고맙다. 아이들이 그런 명절을 축제처럼 여기니 함께 즐겁게 내려간다”고 한다.

그 점에 대해서 아내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 그래서 명절 때 꼭 처가를 함께 찾고, 아내가 집에서 하는 수고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떤 부분에서도 아내가 섭섭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한다. 무엇보다 아내도 여자이며, 인격체임을 잊지 않는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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